택시 한 대가 눈앞에서 어정거린다
이차로 아스팔트를 점령당한 밤길
택시번호 1473이 갈림길에서 사라진다
1473, 1473 ……
아, 호롱불처럼 불 켜고 다가오는 번호 하나 있으니
얼마만인가 세상 떠난 아버지와 같이 사라진
그 옛날 우리 집 전화번호
타향살이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따라가지 못한 전화번호
너를 만나다니
세상 인연이란 이리도 우연할 수 있는가
그동안 잘 있었니?
물어볼 틈도 없이 택시 번호판에 붙어 사라진
1473 너를 누르면 아버지가 살아오고
아버지 목소리마저 들려올 것 같은데
생의 뒤안길은 왜 이리 아쉽고 그리운가

▲ 엄계옥 시인

우리들 생각 안에는 수많은 아버지가 산다. 때로는 끓어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자애롭기도 한 그리스 신화 속 열두 신과도 같은 모습이다. 내 몸을 있게 한 아버지는 천년만년 사실 줄 알았다. 그러나 ‘이별은 언제나 뜻밖의 일이 되고,’ 죽어 신이 되신 아버지는 어느 날 문득으로 오신다. 이 시에서는 택시번호가 고향집 전화번호와 일치했던 것. 아버지는 삶 안에서 함께 있을 때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가 이승 밖으로 떠나고 나면 현자로 와서 마음 안에서 영원을 산다. 이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을 통해서 연옥과 지옥을 넘나들면서 현자가 되어 간다. 해서 모든 아버지는 현자이며 신이다. 내 자식을 기르면서 완전한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가 현자였음을 깨닫지만 그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리움이고 회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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