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或百步而後止(혹백보이후지)하며 或五十步而後止(혹오십보이후지)하여 以五十步(이오십보)로 笑百步(소백보)면 則何如(칙하여)하니잇고 曰(왈): 不可(불가)하니 直不百步耳(직불백보이)언정 是亦走也(시역주야)니이다.’ 맹자의 한 구절로 ‘오십보백보’가 유래한 문장이며 한문 교과서 2과의 본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학교 2학년 학생들이 모두 암송하는 문장이다. 또 교과 연계 독서를 통해 여러 텍스트를 함께 읽고 보고서까지 작성해 나름대로 우리 학교에서는 매우 유명한 문장이다.

오십보백보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뜻하는 말로 ‘도토리 키재기’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맹자는 양나라 혜왕에게 진정으로 백성을 위해 베푸는 정치가 아니라면 오십보 도망간 군사나 백보 도망간 군사나 똑같다며 백성에게 자비를 더 베푸느냐 덜 베푸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 이 비유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맥락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오십보백보를 맥락에서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수업을 기획해 보았다.

4차시에 걸쳐서 큰 소리로 읽기, 번역하기, 만화 읽고 공감 컷 필사하기, 맹자 텍스트 읽고 보고서 작성하기를 실시했다. 4차시동안 줄기차게 큰소리로 읽은 맹자는 이제 입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지겹다고 하면서도 보고서에는 4차시동안 학습을 통한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남에게 무언가 설명할 때 맹자처럼 좋은 예시를 들어 설명해야겠다. 반복해서 읽어서 문장을 외울 수 있었다. 지루하고 딱딱한 말만 할 것 같은 맹자를 잘못 평가하고 있었다. 간혹 어떤 수학 문제는 반복해서 아무리 풀어 봐도 또 틀려서 답답했는데 사실 100문제나 200문제나 푸는 양과 상관이 없이 본질적인 개념을 몰라서 헤매던 내가 생각났다.’

아이들은 독후 활동을 통해 맹자의 오십보백보라는 텍스트에만 국한되지 않고 진정한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했고 변명하기에 급급한 혜왕을 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다. 4번에 걸친 반복과 심화 학습을 통해 문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외워서 뿌듯하다며 기뻐하기도 했고 앞으로 공부는 이렇게 해야겠다면 다짐도 했다.

한문은 모든 연령과 세대를 초월해 어렵고 싫어하는 교과이다. 게다가 국영수사과의 중심에서 아주 먼 변방의 교과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암기 과목이다. 이렇다 보니 교사로서 수업 중 겪는 비주류의 아픔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새내기 교사 시절엔 이 아픔을 극복해 보려고 수업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마흔이 되고 난 이후 내 삶의 여러 시련들이 나에게 한문 문장을 보는 안목을 주었고 이젠 그걸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또 울산광역시 교육청의 ‘행복한 아이 중심 수업’ 프로젝트로 교실 수업 개선과 관련해 거꾸로 수업, 하브루타 수업 등을 만나며 생각이 달라졌다. 많은 양의 지식보다는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 아이들의 심장이 뛰는 수업이 목표가 되었고 내게 교과연계 독서 수업은 그 답이 되어주었다.

모든 교사는 좋은 수업을 꿈꾼다. 좋은 수업은 많은 양의 교과 지식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교과 지식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아이들의 생각을 이끌어 내는 수업 그리고 그런 생각들로 학생들의 삶에 변화까지 줄 수 있는 수업이 아닐까 하고, 나는 지금, 졸리는 오후, 좋은 수업이라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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