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고질적 관행 ‘대학서열화’
한국 공교육 붕괴 근본 원인 지적
잘못된 관행 탈피 성찰·노력 필요

▲ 이근용 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우리는 수많은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굴레들은 대개 조직이나 제도에 의해서 씌워진 것이지만 스스로 씌운 것도 있다. 아침 식사 전 1시간 운동하기, 한 달에 책 5권 이상 읽기 같은 자기발전을 위한 굴레가 있는가 하면 무기한 단식, 삼보일배 같은 의사표시를 위한 굴레도 있고, 채식하기, 금주하기 같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굴레도 있다. 개인이 스스로에게 씌운 이런 굴레들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언제든지 걷어낼 수 있다.

그런데 시각을 사회로 돌려 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우리 사회도 스스로에게 씌운 수많은 굴레들이 있다. 이들은 법령, 윤리, 관습, 관행 같은 것들이다. 법령이라는 굴레는 형성 주체나 과정이 명확하고 구성원들에게 강제성을 띤다. 윤리나 관습의 굴레는 사회적으로 동의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는 점에서 비교적 거부감 없이 수용된다. 관행의 굴레는 이들과 달라 언제 어떻게 형성됐는지가 명확치 않지만 우리 의식과 행위를 옭죄고 있다. 누군가 처음 시작한 행위가 반복되고 모방되고 하면서 모르는 사이에 관행으로 굳어진다.

이런 관행들 중에 최근 많이 거론되는 것은 ‘갑질’의 관행들이며, 얼마 전까지도 촌지 관행이라는 말은 흔히 들을 수 있었다. 갑질 관행은 현재 사회적으로 자정의 과정을 거치고 있고, 촌지관행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많이 사그라진 느낌을 받는다. 관행은 행위 당사자들이 대개 이익과 편의를 위해 취한 행위들이 누적돼서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진 것들이다.

대학가에 고질적인 관행으로는 대학 서열화가 있다. 대학 서열화 관행은 대학입시 지원을 좌우하고, 졸업 후 취업을 좌우한다. 입시철에 성적에 따른 지원가능 대학 배치표가 기준이 되고, 취업시즌에 어느 대학 출신인가가 서류전형을 좌우하는 일은 오래된 관행이다. 채용 시 지역인재 할당과 블라인드 테스트는 이 관행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인데,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최근에 데이터과학자로 다양한 경력을 가진 캐시 오닐이 빅데이터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룬 책 <대량살상 수학무기>(김정혜 역)를 출간하면서, 미국의 대학들이 어떻게 서열화 과정을 밟게 됐는가를 소개하고 있다. 미국의 대학 서열화는 경쟁에서 밀려 고전하던 ‘유에스 뉴스&월드 리포트’가 1983년에 미국의 1800여개 대학 전체를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려는 프로젝트를 시도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이 시사잡지의 대학순위는 전국적인 표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했고, 대학들로 하여금 대학순위모형의 기준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하면서 데이터를 조작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오닐의 책에는 이외에도, 대학순위 측정항목에 학비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미국 대학 교육비가 1985년부터 2013년까지 물가상승률의 거의 네 배에 이르는 500% 이상 증가했다는 점, 학생들에게 높은 학비와 학자금 대출의 부담을 떠안게 한 점, 교육시스템이 가난한 학생들을 차별하고 그들 대부분을 가난으로 이어지는 길로 밀어 넣음으로써 결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불러왔다는 점, 대학들이 순위를 올리기 위해서 기부금 유치 경쟁을 벌이는데 따른 문제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결국 한 시사잡지의 대학순위 모형이 미국 대학 교육시스템을 왜곡시키고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 현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대학 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비슷하게 안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서열화에 있다는 점이 누누이 지적돼 왔다. 1994년부터 매년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를 발표해 오고 있고, 최근에 대학 구조개혁 평가를 하면서 대학 순위를 매기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대학서열화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관행을 강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대학등급제 차별채용도 우리 사회가 스스로 씌운 굴레인 대학서열화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행이 더 이상 우리를 옭아매고, 지역의 청년들을 낙담하게 하지 말자. 스스로 씌운 관행의 굴레, 성찰과 의지로 얼마든지 걷어낼 수 있다.

이근용 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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