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태왕은 소후 여옥에게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경은 아이를 바꾼 것을 시인했다. 그런데 너는 왜 말이 없는가!”

“ …….”

“꺽감이 정녕 가야의 회령왕과 너의 아들이 맞는가!”

여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맞사옵니다.”

“이이 못된! 내가 너에게 그토록 하해와 같은 자비를 베풀었거늘, 너는 정녕 나를 속였단 말인가!”

태왕은 대노했다. 장화황후도 태왕과 대례를 치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이처럼 진노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장화황후는 앞으로 전개될 이 상황이 두려우면서도 마음은 맑은 하늘처럼 시원했다. 그동안 태왕이 사랑한 애첩 소후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불면으로 지새웠던가. 더구나 소후가 데려온 가야아이 꺽감마저 태왕이 금지옥엽처럼 사랑해 한 때 꺽감이 소후와 태왕 사이에 난 아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꺽감이 학문과 무예, 건강에서 자신의 아이 거련보다 뛰어나 보일 때마다 그녀의 가슴은 미어터질 것 같았다. 장화황후는 미천한 땅 가야에서 올라온 두 사람 때문에 늘 짜증과 신경질이 떠나지 않았고 좌불안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박지의 놀라운 보고를 받고 눈엣가시인 애첩 소후와 턱에 달린 혹 같은 꺽감을 한꺼번에 제거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장화황후는 태왕에게 말했다.

“박지 집사의 말에 따르면 여옥은 고상지와 사통한 뒤 고상지의 허락 하에 수경의 아이와 바꿔치기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폐하를 속인 가야의 역적들, 소후와 꺽감, 수경과 후누, 고상지를 처단하고, 이번 일에 공을 세운 박지 집사를 대가야의 왕으로 삼으소서.”

태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욱이 여옥이 고상지와 사통해 그런 짓을 저질렀다니 여옥을 용서할 수 없었다.

태왕은 여옥에게 미련이 남아 다시 물었다.

“그래, 네 아이를 살리려고 고상지와 사통까지 했단 말이냐? 넌 도대체 어떻게 된 여자란 말이냐?”

사통의 말이 나오자 여옥이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폐하, 고상지와 사통한 적은 결코 없습니다. 그것은 박지 집사의 음해이옵니다. 고상지는 어리석고 아둔하지만 폐하께는 충직한 군인입니다. 고상지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저와 수경이 아이를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장화황후가 옆에서 소리를 질렀다.

“네 년이 앙큼하게 거짓말을 하는구나. 고상지와 사통하지 않고서 어떻게 네 아이를 살릴 수 있단 말인가!”

태왕이 흥분한 황후를 제지한 뒤 부하들 앞에서 추상같이 말했다.

“이제 내가 명을 내리겠다. 나를 속인 소후와 꺽감, 수경은 모두 참수하라. 고상지 도독과 후누 장군은 지금 전쟁 중에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으니 목숨을 살리도록 하라.”

 

우리말 어원연구

살리다(살다). 【S】sarita(사리타). abide, live a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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