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왕생이길

 

왕생, 임금이 날만한 곳 의미
신라 김유신도 이곳에 조상묘 모셔
양방향의 차로를 ‘이수’
세곳의 중앙 보도 ‘삼산’으로 디자인
‘이수삼산’의 비경 되살린듯
소금생산지로 유명했던 삼산
소금밭 대신 빌딩숲으로 변모했지만
왕생이길이 잊혀진 의미 되짚어줘
울산 명장들 손 프린팅도 볼거리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이맘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가을편지라는 노래이다. 늦은 주말오후 때맞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율을 따라 마음은 어느새 하늘에 가닿는다. 쪽빛으로 물들어 찬란한 하늘과 칸칸이 새하얗게 그려진 구름 아래로 가을을 머금은 길이 눈에 들어온다.

목화예식장 사거리에서 남구청까지 550m의 왕생이길이 높은 빌딩 사이로 접었다 펼쳐놓은 팝업북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전선과 통신선을 지중화하고, 왕생이들 설화를 배경으로 디자인을 특화하여 지역상권 활성화 및 보행자 중심의 거리를 만들기 위해 새로 정비한 것이다.

왕생이란 임금이 날만한 곳이란 의미로 남산십이봉과 관련이 있다. 영축산이 동쪽으로 뻗으며 크고 작은 12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옥동에서 신정동에 걸쳐 있는 산봉들을 ‘남산십이봉’이라고 하며 예로부터 울산 사람들 중에 ‘남산십이봉’ 아래에 큰 명당이 있다고 회자되어 왔다. 왕생이들, 한림정터, 은월터가 그것이다.

▲ 지난 23일 남구 왕생로 일원에서 경상일보가 주최한 2017 왕생로거리문화축제.

조선 중엽 국풍이라는 한 풍수가가 문수산에 올라 사방을 두루 살핀 후 동쪽으로 발길을 돌려 남산 12봉을 거쳐 은월봉까지 오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동서남북을 두루 살펴보더니 이윽고 무엇인가 찾은 듯한 표정으로 산을 내려와 달동의 옛 이름 환지에 갈대를 헤치고 미리 준비해 온 쇠말을 박고 난 뒤 중얼거리듯 ‘왕생혈’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그곳을 왕생이들이라 불렀다. 또한 왕과 버금가는 인물,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 ‘은월사지’에 따르면 김해김씨 가락국왕의 아들 무력장군과 자 서현공 즉 김유신장군의 조부와 부친의 묘가 은월봉에 있으며 훗날 자손들이 은월봉의 동쪽에 제단을 정하고 매년시월상순에 단상신패(壇上神牌)를 나란히 받들어 모셨다고 한다. 현재 신정3동에 위치한 은월사에 무력장군과 서현공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가을에 제를 올리는 것도 두 분의 묘가 이곳에 있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김유신은 왜 이곳에 조상의 묘를 모셨을까? 단지 명당이어서 일까 아니면 달을 감춘 은월봉처럼은 비록 가야출신일지라도 태화강을 건너 왕경으로 왕가로 들어가 신라의 주인이 되겠다는 야망을 묻어둔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은 아니었을까?

잠시 풍수에 빠져 있으려니 이내 꽃향기를 실은 바람은 바쁠 것도 없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눈앞에 놓인 길은 삼각주를 연상시키는 중앙분리대와 그 주위로 난 도로로 흐르는 물줄기처럼 사람들의 삶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예로부터 두 줄기의 큰 강 태화강과 여천천 또는 태화강과 동천을 일컫는 이수가 흐르고 울산평야 한가운데 솟은 세 봉우리의 풍광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하여 이수삼산(二水三山)이라 하였다. 중앙 보도를 기점으로 양 방향의 차로를 이수, 세 곳의 중앙 보도를 삼산의 의미로 디자인하였다.

삼산봉우리에 푸른 바위 솟았고
이수 안에는 파란 섬이 가득하네
행인이 벽파정을 가리켜 주는데
비명(碑銘)은 없어져 읽을 수도 없구나
고깃배 불빛이 어둠속에 비치는데
염호(鹽戶)의 연기는 동튼 뒤에 푸르구나
긴 휘파람 소리는 어룡이 들어주고
비바람은 강 언덕에 가득하네

▲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2017년 대한민국 국토경관 디자인대전’에서 삼산사이그라운드와 함께 왕생이길이 우수상에 선정됐다. 사진은 왕생이길 전경.

고려 후기 잠시 울주군수를 지낸 설곡 정포의 벽파정이란 시에서도 알 수 있듯 삼산 일대는 햇빛에 반짝이는 하얀 소금밭이었다.

울산에서는 오래전부터 ‘울산자염(煮鹽)이라는 질 좋은 소금이 생산되었다. ‘달인 소금’으로 불리는 자염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생산되는 전통 소금으로 흙에서 일구어내어 토염(土鹽)이라고도 한다. 자염은 천일염과 달리 조수간만의 차가 적고 개펄이 아닌 모래가 많은 울산에서 생산하는 소금으로 기후가 온난한 울산해안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연중 소금 생산이 가능하였다. 특히 울산소금 생산량의 사분의 삼을 삼산염전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격변의 시대를 겪으며 소금알갱이가 물에 녹듯 사라져갔다. 1928년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사라지기 시작한 삼산염전은 1960년대 들어 산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추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정자가 있는 봉우리도 눈부신 소금밭도 아닌 화려한 빌딩들이 숲을 이루었고 울산 최고의 번화가로서 유행을 선도하는 중심상권으로 변모하였다. 그곳에 잊혀진 의미를 되짚어 주는 왕생이길이 있다.

내친 김에 왔던 길을 되돌아 이번엔 반대쪽으로 걸어 보았다. 뉴코아아울렛 건물 옆으로 ‘명장의 산책’이라는 상징물이 있다. 산업현장에서 땀과 열정을 바쳐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근로자를 대표해 명장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길가에 명장들의 손과 이름을 프린팅해 가는 걸음걸음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혹시라도 밟게 될까 요리조리 피해 걷다보니 어린 시절 친구와 묵찌바 하며 한걸음씩 걸었던 생각이 났다. 가을은 짧은데 가을이 남기고간 추억은 길기만 하다.

▲ 장현 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

길가에 심어둔 왕벚나뭇잎이 드문드문 노랗게 물들어 있고 키 작은 인공 폭포들은 시원한 물소리로 묵은 근심을 씻어내 준다. 눈과 귀와 촉감까지 오감이 설레임으로 젖어드는 순간 조금 전 벚나무를 비웃기라도 한 듯 눈부시게 짙은 분홍색을 내뿜고 있는 배롱나무가 보인다. 나무껍질이 매끄러워 원숭이도 미끄러진다는 말이 있으며 나무의 겉과 속이 같아 선비의 청렴결백이나 언행일치를 나타낸다하여 향교나 서원에 많이 심어졌던 나무이다. 하지만 옛 성현의 가르침과 달리 푸른 나무 사이에 유독 붉게 물들어 있는 배롱나무의 자태는 요염하기 이를 때 없다.

자연과 건물, 사람과 조형물을 번갈아 구경하다 보니 하늘은 석양을 잉태하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매콤한 고추장 냄새는 가는 길을 막아선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먹거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낀 하루의 정점을 찍으러 풍성한 먹거리 속으로 들어가 본다. 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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