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영명사의 경내에는 어두운 구름이 무겁게 내려와 있었다. 경내 마당에는 태왕의 명령을 거역한 대역죄인 여옥, 수경, 꺽감이 포박당한 채 참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에 세운 보좌에는 태왕이 장화황후와 함께 자리에 앉아 세 사람의 처형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망나니가 칼춤을 추며 여옥의 목을 베려하고 있었다.

두둥실 피어난 연꽃과 같이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소후 여옥의 얼굴은 잘린 연꽃 줄기에서 나오는 흰 피보다 더 새하얗게 변했다.

태왕은 지혜롭고 아름다운 소후야말로 그의 숨겨진 힘의 원천이었다. 태왕은 이번 남정에도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하는 소후가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헌데 장화황후의 불같은 질투와 참소로 영명사 뜰에 꺽감, 수경과 함께 포박된 채 무릎이 꿇려져 처형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태왕이 흥분해서 참수령을 내렸지만 망나니의 칼춤을 멈추고 다시 한번 물었다.

“소후, 나는 너의 남편 화령과 그 친척들을 죽였지만 너만은 아껴 목숨을 살려주었다. 헌데 나를 배신하고 고상지와 사통해 화령의 씨앗을 보존하고 반란을 도모해 왕위를 찬탈하려고 했는가?”

여옥은 태왕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마마, 고상지와 사통한 그런 일은 천만 없었습니다. 고상지는 우직할 정도로 철저하게 폐하의 명령을 이행하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마치 까치가 둥우리에 알만 낳으면 잡아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징그러운 구렁이 같았습니다. 저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제 동무 수경이 자기의 아이를 대신 내놓고 제 아이 꺽감을 살린 것입니다.”

여옥은 수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폐하, 하오니 차라리 저와 꺽감을 이대로 죽여 대가야의 종통을 멸하더라도 가여운 제 동무 수경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그래야만 지하에 가서도 편히 눈을 감겠습니다.”

여옥의 말이 끝나자 수경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저희 여인들은 죽여주시되 제 아이의 목숨과 바꾼 이 아이 꺽감만은 살려주십시오. 이 꺽감이 대체 무슨 죄가 있어 이 어린 나이에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지금 전 죽은 제 아이보다 이 꺽감을 더 사랑합니다.”

장화황후는 이 광경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길길이 날뛰며 고함을 질렀다.

“네 이년들, 어느 안전에서 뻔히 보이는 수작을 부리느냐. 네 년들이 대가야의 고상지와 수시로 내통하면서 마지막엔 꺽감을 왕으로 세워 고구려에 반역하려는 걸 모르는 줄 아느냐! 여봐랏! 이 반역의 무리를 당장 처단하라!”

광개토태왕은 장화황후를 보며 말했다.

“황후, 진정하시오. 판결은 내가 내리는 것이오.”

이어 마음을 진정한 태왕이 장수와 신하들 앞에서 준엄하게 말했다.

“짐이 앞의 판결을 거두고 마지막 판결을 내리겠다.”

 

우리말 어원연구

망나니: 망나니의 어원은 한자어 망량이다. 망량(魍魎)은 본래 괴물을 지칭하는 말인데, 죄인의 목을 베던 회자수의 뜻으로 의미가 변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