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생 전 울산시의회 부의장

지난해 7월 한 지구대 조사실에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취객을 방어하는 과정에 취객에게 5주의 상처를 입힌 경찰이 합의금과 치료비 몫으로 5300만원을 배상하고 징역 6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으며 1개월의 감봉까지 당했다. 그런데 이를 딱하게 여긴 지구대장이 경찰내부통신망에 본 사연을 올리자 불과 이틀 만에 동료경찰 5730명이 1억4천만원의 성금을 보내왔다. 지난 15년간 미국 시카고 지역에서 범인검거도중 경찰의 총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21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경찰이 과잉방어로 기소된 것은 단 한건도 없었다. 매번 총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주민들의 항의 및 시위가 빈번히 발생하지만 경찰을 상대로 과잉진압에 대한 소를 제기한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이 실로 의아할 뿐 아니라 믿을 수 없다.

미국에선 피의자가 범인이 경찰의 몸에 손을 대는 행위 만으로도 구속이 가능하며 범인이 칼을 들고 위협할 경우 총기를 사용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보장되며 경찰은 범인보다 한수 위 높은 대응을 하도록 허가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치안현상이다. 비록 개인적인 견해지만 범인을 검거하는 조건이 모두 동일한 여건이 아니긴 하지만 미국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인들의 검거장면을 목격하면서 경찰의 행동이 너무 지나치고 가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찰에게 범인보다 한수 위 높은 대응을 합법화 한 것은 공권력이 부당한 잘못에 휘둘리지 않게 하고 사회 질서를 올바르게 지키기 위한 방편이자 법의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인 만큼 지극히 정당한 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범인이 칼을 들고 경찰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경찰이 어렵게 이를 저지하여도 경찰의 정당방위조차도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사건 발발로 도출된 결과만 갖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결정하는 방식의 제도를 채택하고있는 실정인데 이와 같은 방식의 사건 처리는 잘못된 방법이다. 더구나 아무죄도 없는 사람이 상대에게 폭행을 당해도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많은 공격을 가할 경우 죄 없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분류된다는 것은 인과 관계를 외면한 부당한 법의적용이며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불가에서 많이 거론되는 연기론은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는 논리로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은 인연(연관)이 없이 스스로 독단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 밥상에 오르는 쌀이 밥상에 오르기 위해선 첫 번째는 볍씨가 있어야하고 그 다음은 물과 산소,흙, 햇볕, 그리고 각종비료와 농약, 그외에 수많은 인력이 필요하며 위 사항 중 단 한 가지만 부족해도 벼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없듯이 이 세상에 독자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건을 발생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고 발생한 결과만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하는 것은 공정성과 형평성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미국의 경우처럼 어떤 사람이 불특정다수에게 부당한 물리력을 행사할 경우 상대는 가해자보다 한 단계 높은 대응을 허용하는 것이야 말로 공권력을 올바르게 행사하는 방법이자 부당한 권리행사에 대한 인권침해를 최소화 하고 과잉방어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법의 존재이유는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선량한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지 부당한 범법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춘생 전 울산시의회 부의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