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천년을 고이 간직되어오던 반구대 암각화가 세상에 빛을 본지 겨우 30년 만에, 가치를 인정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아,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댐의 건설로 물에 잠겨 갈수기에나 언뜻언뜻 모습을 내보이다가, 이제 개발이란 이름으로 숨을 헐떡이게 되었다.  울산시는 2002년 월드컵 경기에 때를 맞추어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포함하여 반구대 일대를 유적공원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울산~경주사이의 35번 국도에서 반구대까지의 협곡을 파내 길을 넓히고(너비 3.5m에서 8m로), 대형주차장을만든다고 한다. 월드컵을 겨냥한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이다.  울산시가 최근 밝힌 사업계획안을 얼핏 보면 근사해 보인다. 반구대암각화를 보기 위해 한번이라고 암각화를 찾았던 시민이라면 "잘된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될지도 모른다. 승용차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길 때문에 불편하고 게다가 암각화는 물 속에 있어 겨우 바위벽과 입간판만을 보고 돌아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반가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존의 길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 도로의 확장으로 반구대로 들어가는 협곡은 망가지고 대신 인위적으로 가려진 방어벽이 들어설 것이다. 대형버스들이 드나들면서 매연과 소음을토해낼 것이고 지각없는 관광객들이 내놓은 오물로 반구대 주변이 오염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선사유적인 반구대 암각화는 단순히 바위에 새겨진 그림이 아니다. 선사인들의 삶이 그대로 배어있는 곳이다. 그들의 삶은 당시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 반구대 주변에는 공룡발자국과 원효가 있었다는 반고사터 비롯하여 많은 유적이 흩어져 있어 역사관련단체들이 자주 찾는, 천연그대로의 유적 공원이다.  좁게는 울산을 대표하지만, 나가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이 제대로 된 검증절차를 거치지도 않은 채 성급한 공원화사업으로 훼손해서는 안된다.  그것보다는 시립박물관 건립이 오히려 우선돼야 한다. 조그만 도시에도 있는 시립박물관이 인구 100만이 넘는 울산광역시에는 없다. 고작 울산대학교 박물관이 전부다. 그나마 전시공간을 확보하지 못하여 상설 전시도 못하고, 일정 기간을 정하여 특별전 형식으로 유물을 일반에 공개한다. 시립박물관 설립논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울산시가 가진 문화적 인식수준에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울산을 사랑한다. 울산이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 잠재된 문화유산을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사는 울산을 바로 알기 위해 지난 94년부터 역사기행단체 "내림터사랑"을 운영하고 있다.  회원들과 함께 다시 반구대를 찾을 것이다. 흙을 밟고 걸어들어가며 염원을 담아 암각화를 새겼을 선사인들을 생각하며, 또 천전리 각석에 이르러 신라의 화랑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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