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태왕은 소후의 침전에 들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고구려 벽화의 그림처럼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태왕이 연주하면 신음소리를 내는 수동적인 악기였다. 어깨까지 드리운 향기로운 생머리, 반듯한 하얀 이마와 여운이 감도는 입매, 부드러운 어깨선과 무릎 위에 얌전하게 포개진 손. 그녀의 알듯 말듯한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태왕은 조용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연주하곤 했다.

그녀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바꿔치기 한 꺽감 때문에 늘 마음이 불안하고 복잡했다. 꺽감은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다. 태왕의 땅에서 사는 한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평생 숨어지내야 하는 존재였다. 그런 꺽감이 오늘 처음으로 태왕의 인정을 받고 다시 태어난 날이었다. 이제는 감춰야 할 비밀도 이야기도 없었다.

오늘 밤은 그녀에게서 미완성의 신비스런 미소와 애매한 몸동작은 찾을 수 없었다. 알몸이 된 그녀는 벽화 속의 여인처럼, 명상에 잠긴 비구니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린 자유로운 혼백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태왕이 손을 뻗치자 그녀는 드넓은 만주초원을 자유로이 뛰노는 한 마리 아름다운 암사슴이 되었다. 태왕은 암사슴의 뒤를 쫓는 거대한 수사슴이었다. 암사슴이 멀리 눈 덮인 백두산을 보며 샘물을 마시고 있을 때 거대한 뿔의 수사슴이 자신의 목으로 암사슴의 목덜미를 부비였다. 암사슴은 앙증스런 소리를 내었다.

 

태왕은 뒤로 돌아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안심하시오.”

“고맙습니다.”

“꺽감이 당신의 아들이라는 게 다행이오.”

“미안합니다.”

“미안하긴. 꺽감은 회령왕의 씨앗이자 두 여인간의 우정의 열매요. 잘 키우시오.”

“오늘밤 정말 폐하의 아이를 가지고 싶습니다.”

“그건 오래 전부터 내가 바라던 바요.”

태왕은 부드럽게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뒤에서 교접했다. 그러자 암사슴의 엉덩이가 엄청난 탄력으로 반발했다. 암팡지게 튀어 오르는 엉덩이의 매끈매끈한 촉감이 투명하게 느껴졌다. 수사슴의 힘은 강했다. 거대한 뿔을 흔들며 반발하는 탄력성을 향해 진격하고 또 진격했다.

한 차례의 격정은 파정 직전에서 멈춰 통제되었다. 거센 비바람이 불다 폭풍 직전에 멈춘 고요와 같았다.

소후 여옥은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이번 전쟁에서 가야는 어떻게 되나요?”

“금관가야는 몰락하고 대가야가 일어설 거요. 장차 소후와 꺽감의 역할이 커질 거요.”

태왕은 그녀의 입술에 접문하고 다시 진격했다. 잠시 식은 몸에서 정염이 다시 솟아올라 붉은 몸이 되었다. 격정이 지난 고요 속에 나눈 대화가 오히려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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