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서 ‘군함도 증언 및 간담회’ 개최

▲ 군함도 사진전 관람하는 생존자 / 연합뉴스

 “몽둥이를 맞으며 고통스러워 하던 강제 징용자들의 비명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구연철(87·부산) 씨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 현장인 일본 나가사키현 군함도에 입도한 것은 70여년 전인 1939년이다.

구씨는 군함도에 먼저 간 아버지가 불러 할머니·어머니와 함께 입도했다. 

구씨의 아버지는 당시 징용으로 끌려간 광부가 아닌 ‘모집 광부’로 조선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가족들과 군함도에서 살기로 했다. 

구씨는 가족들과 부산에서 관부 연락선을 탄 뒤 사흘여 만에 군함도 관리사무실에서 아버지와 재회했다. 

양복과 넥타이를 맸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던 소년은 일본의 전통 남성 속옷인 훈도시만 입고 온몸에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의자에 앉아 일하던 관리사무소 직원 중에 아무리 찾아도 아버지가 안 보여 두리번거리는데 온몸이 시커먼 남자가 다가와 ’철아∼‘라고 불러 고개를 들어보니 아버지였다”고 울먹였다. 

그렇게 재회한 구씨 가족은 군함도에서 6년 정도 살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귀국했다. 

구씨는 14일 오후 부산시 남구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작가 이재갑 초대전 ‘군함도-미쓰비시 쿤칸지마’의 연계 행사인 ‘군함도 증언 및 간담회’에 참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20대 전후의 조선인 청년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 관리사무소와 식당 주변에서 이들이 수시로 몽둥이 등에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거친 비명을 거의 매일 들으며 학교와 집을 오갔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인 콩깻묵 찐 것을 밥 대신 먹었다. 

배가 고파도 먹을 게 없어 찐 콩깻묵을 먹어야 했고 어김없이 설사가 계속됐다고 한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일본인들이 사는 번듯한 주거시설의 지하에 살았다. 이들의 주거공간에는 통풍이 안 돼 습기가 가득했다.

구씨는 지난해 해방 이후 처음으로 군함도를 다시 찾았지만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생활했던 주요 공간은 공개가 안 돼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어렵게 군함도에 갔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못 본 셈”이라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알리기 위해 계속 증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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