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도가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엄계옥 시인

세상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가득 한 시다. 랭보는 시인을 견자(見者) 라고 했다. 말하지 않아도 외로운 사람 안에 든 허기가 훤히 보일 때가 있다. 아기를 업고 밥상 앞에 무릎 꿇고 혼자 밥 먹는 남자를 볼 때였다. 저 밥이 목숨을 좌지우지하고, 저 밥이 돈이고 눈물이고 끈기라서 바라보는 마음이 애잔했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혼자 라면 먹는 남자와 노인의 쩍 벌린 입에 연민을 느낀다. 혼밥 혼술이, 혼행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진다. 사람은 만날수록 독안에 든 게처럼 서로를 끌어 내리기에 바쁘고 세상은 초스피드로 변해간다. 호모사피엔스는 생체리듬 상 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 속도를 따르다보면 가족도 친지도 잃고 혼자 남게 된다. 시인은 생에 대한 비밀을 알아버린 또 하나의 작은 신이라서 거룩한 밥 앞에서 목이 메인다. 그 어떤 것도 밥 다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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