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결혼 등의 ‘명절잔소리’는
젊은세대를 더 찌들게만 할뿐이다
차라리 무관심이라는 배려가 필요

▲ 최건 변호사

길었던 추석 연휴도 끝이 나고 일상이 시작됐다. 최장 10일이 넘는 여름휴가 이상의 긴 시간이었던 만큼 사람들마다 나름대로 알차게 보내었을 것이다. 해외 또는 국내 여행을 가기도 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을 것이다. 혹자는 일상에 쫓기느라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을 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석인만큼 고향으로 내려가 성묘를 하면서 차례를 지내고 그 동안 보기 힘들었던 가족, 친척들을 만나 서로 안부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도 말고 한가위 같아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즐거워야 할 추석 연휴가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그리 즐겁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가족 모임이 있으면 친척 어른들은 어린 친척들에게 근황을 묻곤 한다. 학업을 계속하고 있거나 구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디에 다니냐’고 묻는다. 구직중이라면서 말꼬리를 흐리면 요새 경제가 어렵구나라면서도 ‘내가 젊었을 때는 더 어려웠다. 요새 젊은이들은 모험을 안한다’고 충고한다. 급기야는 ‘누구 집 애는 모 대기업에 취직했다더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 말을 들으면 취업 스트레스가 배가된다. 취직을 한지 몇 년 지난 사람들에게는 ‘왜 결혼 안하느냐’고 묻는다. 만나는 이성이 있냐고 묻고, 있다면 ‘있는데 왜 결혼안하냐’ 없다면 ‘왜 없냐’고 닦달한다. 듣는 사람은 차라리 괜찮은 사람을 소개시켜주면서 그런 말이나 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눈치없는 어른들은 당사자들이 전혀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주변 노총각, 노처녀들을 열거하며 무조건 만나보라고 성화다.

친척 어른의 공격은 결혼한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결혼한 지 몇 년 지나도 아이가 없으면 ‘좋은 소식 없냐’고 묻곤 한다. 아이를 계획적으로 천천히 가지려는 사람들이나 가지려고 노력했으나 아직 결과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출산이 애국’이며, ‘아이를 가져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일장 연설을 한다. 매년 반복되는 레퍼토리이다.

이러다 보니 젊은이들은 연휴 기간에 일부러 회사에 출근하거나 아예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필자가 아는 미혼 여성 중 한명은 친척들로부터 결혼안하냐는 소리를 듣는게 고역이라서 일부러 추석 연휴 기간 중 두 차례나 국내 2박3일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급하게 추석 가족 모임이 잡힌 관계로 웬만한 국내·국외 항공권은 구할 수 없어 부랴부랴 여행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가능한 아무 여행이나 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행 중에 외로울 줄 알았는데 처지가 비슷한 미혼 여성들이 자신처럼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이 많아서 외롭지는 않았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필자 역시 그 누구 못지않게 이러한 잔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심정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사실 잔소리를 하는 친척 어른들은 진짜 그들을 걱정해서 이렇게 말한 것이라기보다는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냥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별 생각없이 한 말일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냥 조용히 지켜봐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평소에도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걱정’과 ‘충고’라는 명목으로 그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키게 하는 대신 ‘무관심’이라는 작은 배려가 오히려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최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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