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광개토태왕은 5만 보기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신라로 향해 쳐들어갔다. 금성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가야병과 왜군을 물리치고 수도 금성을 향해 질주했다.

고구려군이 반월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사품왕은 서둘러 전리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는 너구리같은 성격으로 눈앞의 승리에 그렇게 연연해하지 않았다. 목숨이 부지되고 이익만 나면 도망가거나 무릎을 꿇는 따위는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사품왕은 반월성의 아리따운 왕비와 궁녀들, 값진 금은보화의 보물들을 챙겨 달아날 준비를 하였다.

이사품왕은 핵심 측근과 장수들과 함께 궁궐을 빠져나오기 전 뇌옥에서 내물 마립간을 석방시켜 자기 앞에 무릎을 꿇렸다.

이사품왕은 내물에게 따지듯 말했다.

“마립간 동생, 옥중에서도 아침저녁으로 고구려 왕궁을 향해 절을 한다며?”

“반드시 고구려의 구원군이 와서 왜놈과 붙어 먹은 네 놈을 응징할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할꼬. 평양에 있는 고구려군은 지금 후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북방으로 움직이고 있다네.”

“거짓말 마라. 지금 5만의 고구려군이 성 밖까지 내려와 있다는 걸 옥중의 수인들도 다 알고 있다.”

“그걸 유언비어라고 하지. 자, 난 제수씨와 궁녀들을 데리고 금관성으로 간다. 창고 안에 있는 값진 보물들은 가는 길의 노잣돈으로 쓰겠네.”

“무엇이라고? 내 아내와 비빈들을 약탈해 간단 말이냐. 이 천하에 잡놈 같으니라고!”

“제수씨 보반부인은 천하의 미인으로 소문난 여자인데 이곳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지.”

“이 더럽고 추잡한 놈, 그러고도 같은 형제라고 말할 수 있느냐.”

“내물 마립간, 그동안 같은 형제끼리 한 짓을 보면 네 놈이 감히 이렇게 말할 자격이 되느냐!”

가야와 신라의 건국시조는 같은 김씨로 서로 형제였다. 김씨의 시조는 흉노족 휴저왕의 왕자 김일제였다. 후한 광무제에 의해 중국 땅에서 김일제의 후손들이 진멸될 때 형제 간인 김수로와 김알지는 중국에서 도망쳐 한반도로 건너와 각각 가야와 신라의 건국시조가 되었다.

김알지에 비해 건국의 시기도 빠르고 항렬도 빨라 여러모로 형의 위치에 있었던 가야의 김수로왕은 동생인 신라와 더불어 잘 살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은 형을 공격해 수시로 땅을 빼앗아갔다. 신라 김씨는 고구려를 든든한 뒷배로 삼아 전쟁과 협상, 늑약을 통해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야금야금 형의 나라인 가야 땅을 먹어치웠다.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가야의 여러 왕들과 왕비와 비빈을 납치하고 약탈해 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라의 내물 마립간이 미오야마와 독로국까지 먹어치우려 하자 가야의 이사품왕은 백제, 왜와 손잡고 동생의 나라인 신라를 쳐 응징했던 것이다.

우리말 어원연구

미오야마: 현재의 합천 묘산국. 미오는 묘, 야마는 산으로 일본어다. 고대 일본어는 한반도 남부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우리 언어에서 나온 것이고 우리 언어와 뿌리를 같이 한다.

독로국: 현재의 부산 동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