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내몰림’식 도시정비 지양하려는
도시재생뉴딜사업 취지에 적극 공감
목표에 집착않는 유연한 운용 필요

▲ 최연충 울산도시공사 사장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 속에 새 정부가 출범, 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동안 보여준 소통 방식은 신선했고, 내놓은 정책은 파격적이었다. 경제정책은 일자리 창출과 서민 복지 증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 정책기조를 뒷받침하는 도시 및 주택분야 핵심사업이 도시재생뉴딜이다. 향후 5년간 50조원을 투입하여 전국 도시의 면모를 바꾸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사업방식도 지금까지의 도시개발 패턴과는 사뭇 달라서 더 눈길을 끈다. 낙후된 도심 주거지역을 정비하되 기존의 커뮤니티를 그대로 살려나간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도시 정비사업은 대부분 낙후된 특정 구역을 허물고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개발이 끝나면 옛 동네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고층아파트와 대형 상가가 들어서기 마련이었다. 기존 주민들은 얼마간의 보상금을 받아들고 새로운 삶터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이른바 ‘둥지 내몰림’ 현상이다. 이같은 삭막한 개발 방식을 탈피하겠다는 것이 새 정부의 뜻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2016년 기준으로 91.8%에 이르고 있다. 대략 열명중 아홉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UN 통계기준에 의하더라도 우리의 도시화율은 영국과 비슷하고 미국이나 프랑스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1970년의 도시화율이 50% 언저리였으니 불과 40여년만에 국토 공간구조에 대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이 기간에 또한 세계에서 유례없는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고도 경제성장이 이어졌다. 우리의 경우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쌍끌이로 국가 발전을 이끌어온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전되다보니 도처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도시의 외연은 확장되었으나 필요한 인프라가 이를 뒤따르지 못했고, 옛 도심 곳곳은 변화에 뒤처지고 슬럼화되어갔다. 이를 해결하느라 이곳저곳 산발적으로 도시 정비를 추진하긴 했지만 수익성을 좇다보니 결과는 대부분 기대에 못미쳤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도시에서 모듬살이의 온기는 사라지고 공동체의 가치는 희미해지고 있다. 이번의 도시재생뉴딜 사업은 이같은 문제를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근차근 풀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문제 인식이 적절하고 방향 설정도 옳다. 다만 이 좋은 취지가 제대로 현실에 투영되기 위해서는 꼭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내걸은 목표치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설정한 기한내에 다 이루려고 과속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사업의 유형과 추진방식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는데, 이것도 그 자체에 너무 얽매여서는 곤란하다. 가이드라인은 어디까지나 큰 틀의 방향 설정인 만큼 원래의 사업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현장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해주면서 유연하게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도시가 가진 역사적 배경이나 발전정도, 특성이 다 다른 만큼 도시 재생의 모양새도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도시는 완성되는게 아니라 생물체처럼 늘 변하고 움직인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도시는 언제나 미완성인 채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며, 우리는 이 변화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노력할 따름이다.

도시의 면모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바뀌어가는게 자연스럽다. 유럽의 기품있는 고도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도시는 모두 오랜 세월 수많은 장인들이 땀과 지혜를 쏟아부어 차곡차곡 일구어낸 작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정책일지라도 시간을 억지로 당기려고 하면 무리가 따르고 탈이 나기 마련이다. 신선한 발상으로 불을 지핀 도시재생뉴딜, 차분히 진행하여 우리 도시의 품격을 한차원 높이는 마중물로 삼기를 바란다.

최연충 울산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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