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울산의 영산(靈山), 문수산

▲ 문수산에 오르면 문수사 내 소원을 담아 문지르는 ‘문댐돌’과 그 옆 바위벽에 모셔져 있는 작은 돌부처와 약사여래(시계방향으로)등 을 만날 수 있다.

삼국유사 등 문헌 기록에 남아있는
문수산 일대 신라 사찰은 10곳 달해
문수사는 입시철마다 문전성시 이뤄
새-풀벌레 협연하는 선율 들으며
문수산에 오르니 가을 꽃들 반겨줘
싱그러운 자연 인기 등산코스이기도

끝없을 것 같던 무더위도 하루아침에 청량한 바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 또 언젠가는 살을 에는 칼바람에 쫓겨 갈지 모르는 이 가을의 소중함을 아끼는 마음으로 문수산에 오를 용기를 냈다.

문수산이 울산의 상징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선사 때부터 지혜를 관장하는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영산인데다가 도심에서 가깝고 등산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어서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신령스런 기운도 받고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등산로는 한갓질 새가 없다.

 

문수산의 대표 사찰인 문수사는 입시철에는 마당에 차린 보조 법당도 비좁을 정도로 기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 역시 우리아이들 입시 때에는 법당의 문지방을 수없이 넘었다. 새해 아침에는 추위도 무릅쓰고 문수산 정상에 올라 마음을 다지며 소망을 빌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 들어 간절한 바람도 없어졌으니 그저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를 일만 남았는데 힘이 부친다.

약간의 간식과 물을 챙겨 작은 배낭을 메었다. 스틱까지 잡고 나서니 제법 근사한 폼이다. 9시에 신복초등학교 앞에서 출발했다. 전파천문대 옆을 지나 맨발 등산로에서 발바닥을 지압해보고 정골 약수터에 들렀다. 한 모금 약수를 마시니 마음이 청정해지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문수산 등산코스는 어디를 택해도 온통 숲길이어서 좋다. 새들과 풀벌레들과 바람이 협연해서 내는 선율이 숲속에 가득 울려 퍼져 황홀하다. 어떤 교향곡이 숲속의 가을 소리보다 더 아름다울까. 청설모가 도토리랑 솔방울 속의 씨를 까먹고는 껍질을 어지럽게 버려둔다. 반지르르 윤기 나는 검은 털과 마당 빗자루 같은 꼬리를 자랑하며 이 나무 저 나무 위를 건너뛰며 곡예를 하다가 수직으로 내려와 발 앞을 스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다람쥐도 방금 도토리를 묻었는지 흙을 다지고는 죄를 지은 양 재빨리 바위 뒤로 숨는다.

 

옆지기를 믿은 것이 탈이었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길을 잘못 들어 다른 코스의 하산 길로 내려가고 있었다. 거기서 문수산으로 가려면 영축산을 넘어야 한다. 영축산은 높이가 352m지만 오르는 길이 험하고 정상에서 다시 골짜기로 내려가야만 문수산으로 갈 수 있다. 이왕 나온 김에 영축산에 발 도장을 찍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잔소리를 접었다. 정상 표지석이 동강이 나서 나무도막으로 고여 놓은 것이 안타까웠다.

문수산을 신라와 고려 때는 영축산이라 했다. 석가모니 부처가 법화경 등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영축산(靈鷲山)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단순히 명칭만 빌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삼국유사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문헌 기록에 나와 있는 문수산 일대의 신라시대 사찰은 10곳이고 이중에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것이 6곳이다(간접적으로 언급된 문수사 포함). 삼국유사에 소개된 대부분의 절들이 신라불교를 대표한다는 점만 보더라도 문수산은 신라 불국토사상을 구현하고 발전시킨 중요한 성지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영축산이라 하면 통도사 뒷산을 떠올린다. 문수산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문수산 동쪽의 이 작은 산은 그대로 영축산으로 남고 양산의 영축산이 더 알려지게 된 모양이다. 영축산은 한글로 영취산이라고도 해서 혼돈스럽지만 영축산으로 표기하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鷲’자는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 문수산 정상 표지석.

상념에 빠져 걷다보니 어느새 깔딱고개에 다다랐다. 이곳은 해발 326 m이고, 문수산 정상은 600m이다. 정상까지 0.7km 남았다니 엄청난 된비알이다. 깔딱고개라는 이름값을 치르려면 수도 없이 숨을 깔딱거려야 할 것이다.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네이버지도 안내보다도 5분이 덜 걸렸으니 아직은 건강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깔딱고개 초입에서 우리에게 걱정의 말을 건네던 50대 남자 등산객들도 거뜬하게 올라온 우리를 보고 놀라워했다.

정상에는 구절초와 벌개미취 등 가을꽃이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가을 산경(山景)의 아름다움은 일품이다. 멀리 울산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동해 바다도 보인다. 남쪽으로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가 숨어들어 여생을 마쳤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남암산이 신라 멸망의 슬픔을 간직한 채 말이 없다.

하산은 문수사를 거쳐 영축마을로 하기로 했다. 문수사는 절벽 위 좁은 터에 크지 않은 규모로 세워져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웠다고도 하고 원성왕 때 연회국사가 창건했다고도 하나 당시의 유적이나 유물이 없어서 두 설 모두 확실치는 않다. 대웅전 옆 명부전을 오른쪽으로 끼고 계단을 오르면, 소원을 담아 문지르는 ‘문댐돌’과 그 옆 바위벽에 모셔져 있는 작은 돌부처가 시선을 끈다. 근처 청송사터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문수사 문화재 중,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5호인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울산박물관에, 16호인 탱화 3점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 이선옥 수필가·전 울주명지초등 교장

문수사 주차장에서 안영축마을까지의 길이 왕복 2차선으로 확장돼 차량 통행은 편해졌지만,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 찬 구불구불한 원시림 속으로 피톤치드를 듬뿍 마시며 걷던 지난날의 정취는 찾을 길 없어 안타깝다. 안영축마을에 있는 영축사지를 찾았다. 삼국유사 등의 기록으로 미루어 영축사는 신라시대에 문수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추정된다. 울산시 기념물 24호로 지정되어 있고 울산박물관이 발굴조사 중에 있다.

영축마을에서 마을버스에 올랐는데 우리집 앞에 정차한다고 하니 운수대통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마치 성지 순례라도 한 듯 가슴이 뿌듯하다. 신라 불교의 한 축이었던 문수산 일원의 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도 이뤄지고 영축사와 같은 절들도 복원되었으면 좋겠다.

이선옥 수필가·전 울주명지초등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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