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보다 실리 택한 조조의 정치처럼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작금의 한반도는
과거청산보다 현실문제 해결에 힘모아야

▲ 이광북 국회입법정책연구회 부회장

흔히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를 간웅(奸雄)이라 잘라 정의해 버린다. 조조는 한 단어로 규정해버릴 만큼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격파했을 때의 일화다. 부하들이 원소의 기밀서류를 찾아내 조조에게 바쳤다. 기밀서류에는 그때까지 전력이 월등히 우세했던 원소와 내통한 조조 부하들의 명단이 있었다. 조조 측근들은 반역자들을 색출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조는 기밀서류를 뜯어보지도 않고 불 태워버렸다. 그러면서 한 말이 걸작이다. “원소가 얼마나 막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나? 나도 마음이 흔들렸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 반역 논란을 불문에 붙인 것이다. 세상은 조조의 아량에 탄복했고, 부하들의 충성심은 하늘을 찔렀다. 천하의 인재들도 조조에게 모여들었다.

조조는 만물을 사랑하는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부하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어진 지도자도 아니었다. 그는 영리했고, 현실감각이 뛰어났다.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 계산에 밝았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세에 마구잡이로 복수의 칼날을 휘둘렀다면 속이야 후련했겠지만 뛰어난 장수와 지략가 여럿을 잃었을 거다. 반역자 명단이 군대 내 정치싸움을 유발했을 거다. 아군끼리 의심하고 고발하고 처단하다가 자멸의 길로 들어섰을 수도 있다. 천하의 인재들도 조조를 권력에 눈이 먼 그저 그런 군벌 중의 하나로 여겼을 거다. 그렇게 ‘조조의 성공시대’는 그 기밀문서를 태우면서부터 시작됐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눈을 대한민국으로 돌려보자. 우리 근현대정치는 보복의 역사다. 우리끼리 죽으라고 싸워왔다. 과거사 청산으로 반세기를 보냈다. 오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는 부처별로 적폐청산TF를 만들어 경쟁적으로 과거를 파헤치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말 대통령은 감사원장, 법무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국정원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모든 사정기관장들을 불러 모아놓고는 “수년간 윗물이 깨끗하지 못했다”며 과거사 일소를 주문했다. 여당은 전전 정부까지 비판하며 연일 전선을 조이고 있다. 야당도 맞불작전이다. 노무현 뇌물 의혹을 꺼내들었다. DJ 비자금도 꿈틀거린다. 이번 정기국회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림이 훤히 그려진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우리 머리위에 핵폭탄이 터지고 미사일이 날아다닌다. 그 파멸의 도구를 성정이 불안정한 젊은이가 쥐고 있다. 우리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다. 한국경제가 불황의 긴 터널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주류다. 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간다. 국가신용등급은 하락할 조짐이고, 국가부도위험 지표는 고개를 쳐들고 있다. 게다가 저출산 고령화 리스크까지 한마디로 국가 존폐위기에 직면해 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일단은 모두가 살고 봐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그간 쌓인 악감정, 심지어 잘못도 잠시 덮어두고 여·야·정, 진보·보수 빠짐없이 한 몸이 돼야 정상이다. 지금은 미래도, 더더구나 과거를 쳐다 볼 때도 아니다.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정치인 개개인은 평균 이상의 지식과 논리적 사고력과 애국심과 두려움을 갖췄을 거다. 위기상황에 처하면 그들 모두 한곳을 바라봐야 정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은 비정상을 가리키고 있다. 심지어 같은 편에 대한 분노의 표출과 보복을 주저할 줄도 모르는 극단의 비정상을 보여 왔다.

조조는 초인이 아니다. 조조만큼 영리하고 이성적인 인물,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정치인이 한국에 넘친다. 그런데도 작금의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보면 ‘불가사의’라는 말 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결국 용기와 희생의 문제인가?

이광북 국회입법정책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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