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다른 지역으로 ‘도미노 효과’ 가능성

▲ 로베르토 마로니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지사가 22일(현지시간) 로차에서 자치권 확대를 위한 주민투표에 참가하고 있다. 최소 투표율 규정이 없는 롬바르디아주의 경우 최종 투표율이 40% 안팎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찬성 응답이 9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마로니 주지사는 이날 압도적인 지지로 주민투표가 통과됐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롬바르디아·베네토 “재정 통제권 비롯해 더 많은 권한 달라”
 

이탈리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부유한 지역인 북부 2개 주가 재정 통제권을 비롯한 핵심 정책에 대한 지방 정부의 권한 강화를 요구하며 실시한 주민투표가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번 주민투표가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주민투표를 계기로 다른 지역도 앞다퉈 자치권확대 요구에 나설 것으로 보여 중앙 정부의 권위 약화의 신호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베네치아의 교통수단 바포레토에 부착돼 있는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 홍보 포스터.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 주와 베네치아, 베로나 등이 포함된 베네토 주는 22일(이하 현지시간) 재정 통제권과 치안, 이민, 교육, 보건, 환경 등 핵심 행정에 있어 더 많은 지역 권한이 필요한지를 묻는 주민투표를 나란히 실시했다.

베네토 주의 경우 최종 투표율이 약 57%로 나타나 뜨거운 참여를 보였다.

베네토 주는 투표율이 50%를 넘어야 주민투표의 효력이 인정된다.

또 투표자의 98%는 찬성투표를 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으나 주 정부에 대한 해킹 공격으로 공식적인 집계는 다소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소 투표율 규정이 없는 롬바르디아 주의 경우에도 최종 투표율이 40%로 나와, 로베르토 마로니 주지사가 당초 목표로 밝힌 34%를 훌쩍 뛰어넘은 가운데 찬성 응답이 95%에 달했다.

두 지역의 주지사는 압도적인 지지로 주민투표가 통과됐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루카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는 이번 투표 결과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과 같은 ‘빅뱅’“이라고 지칭하며 ”우리의 텃밭에서 이뤄지는 일은 우리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에 모든 사람이 지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22일 치러진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에서 투표한 로베르토 마로니 롬바르디아 주지사.

마로니 롬바르디아 주지사는 ”진정한 자치권을 얻기 위해 롬바르디아 주민 수백만 명이 부여한 이 역사적인 권한을 이행할 중요한 책무가 내게 있다“며 ”이탈리아 통합의 틀 안에서 더 많은 권한과 재원을 중앙 정부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지역의 주지사는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내세워 지역에서 거두는 세수를 중앙 정부에 덜 보내는 방안을 비롯해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협상을 중앙 정부를 상대로 즉각 개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GDP의 각각 20%, 10%를 기여하는 롬바르디아와 베네토는 반(反)이민, 반유럽연합(EU) 성향의 극우정당 북부동맹(LN) 소속 주지사의 통치를 받는 곳이다.

▲ 22일 실시된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에서 표를 행사하고 있는 루카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

LN은 창당 초기 당론인 북부의 분리 독립은 더 이상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부유한 북부가 낙후된 남부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 아래 끊임없이 자치권 강화를 요구해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 마로니 주지사와 자이아 주지사는 자신들의 지역에서 중앙 정부로 흘러들어 가는 막대한 세수 분담금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대변해 이번 주민투표를 밀어붙였다.

▲ [그래픽] 이탈리아 북부 2개주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 압도적 찬성

롬바르디아 주의 경우 중앙 정부에서 공공 지출 등의 명목으로 돌려받는 돈에 비해 현재 연간 약 540억 유로, 베네토 주는 약 155억 유로를 더 부담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지렛대 삼아 중앙 정부에 대한 이 같은 기여분을 약 절반으로 줄이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GDP의 130%를 상회하는 막대한 부채로 신음하고 있는 이탈리아 정부로서는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주의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이번 주민투표는 법적인 구속력 없이 단순히 권고적인 성격만을 띠고 있는 터라 주민투표 결과가 두 지역의 실질적인 자치권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리구리아 주 역시 현재 자치권확대를 꾀하는 비슷한 주민투표를 검토하고 있고, 산업이 발달한 부유한 북부 지역 에밀리아 로마냐 주 역시 지방 정부의 권한 강화를 요구하고 있어, 이번 주민투표는 지방 정부의 목소리를 키우는 동시에 중앙 정부의 권위가 본격적으로 도전받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이탈리아 경제학자인 로렌초 코도뇨는 AFP통신에 ”이탈리아의 통합이 위협을 받지는 않겠지만, 지방 정부의 자치권확대라는 의제는 향후 더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이 문제는 차기 정부에서 전반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마테오 살비니 북부동맹 대표.

한편, 이번 이탈리아 북부 2개 주의 주민투표는 자치권확대를 묻는 데 그친 데다 국가의 승인을 받은 투표라는 점에서, 스페인에서의 분리 독립 찬반을 물은 카탈루냐의 주민투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투표가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일고 있는 지역의 자치권 강화 요구 물결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2014년 9월 부결된 스코틀랜드의 독립 찬반 투표, 작년 6월 유럽연합(EU)으로부터의 탈퇴를 결정한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지난 1일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투표와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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