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 한국산업인력공단 울산지사장

최근 개봉한 ‘남한산성’은 1636년 청나라의 침입으로 일어난 전쟁인 병자호란을 다룬 영화로 청나라 군대를 상대하는 조선 군인들의 애환과 전투 장면을 실감나게 그렸다. 특히 영화에는 남한산성에 매복한 조선 군인들이 청을 향해 커다란 화포를 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이 화포의 이름은 지자총통. 우리나라 고유의 화포인 지자총통은 화약을 이용해 철제 환을 쏘는 무기인데, 병자호란 직전 일어난 임진왜란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특성상 해전이 많았던 임진왜란에서는 일본군의 조총보다 사정거리가 긴 조선군의 화포가 단연 유리했다고 한다. 특히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화약기술을 자체적으로 연구, 계승해오고 있었고 다양한 화기제작 기술과 전략을 담은 책자를 발간해 국가 기밀로 관리했다. 독자적인 기술의 깊이와 수준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쟁터에서 톡톡한 역할을 한 것이다. 한 길만 묵묵히 걸어온 기술자에게 ‘장인’의 칭호를 붙이는 것 역시 기술을 존중하고 숙련기술인에 대한 존경에서 우러나온 우리의 고유한 풍토이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한 2017년 지금도, 한 분야의 기술을 기밀로 지정하면서까지 기술에 사활을 걸었던 옛 선조들의 피는 젊은 울산 청년들의 가슴 속에 그대로 흐르는 것만 같다.

지난 9월 제주에서 막을 내린 2017년 제52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울산 선수단(울산광역시기능경기위원회위원장 김기현 울산시장)은 10년 만에 원정경기 한 자릿수 성적인 종합순위 9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거뒀다.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지난 2015년 울산광역시 전국기능경기대회와 비교했을 때 참가 직종 중 1직종이 올해에는 감소했고, 또 선수단 인원도 88명에서 84명으로 줄어든 열악한 상황에서 이뤄낸 결실이라 더욱 그 의미가 크다. 특히 무관의 자리였던 귀금속공예 및 도자기 직종에서 올해 처음으로 금메달을 배출하고, 전통적으로 울산선수단이 강세를 보였던 밀링, 용접 직종 등 제조업 분야에서도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하는 등 산업수도 울산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선수단과 지도 교사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성적을 이뤄낸 울산선수단의 뒤에는 숙련기술과 기술 장인을 예우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울산시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울산시는 지난 2014년 ‘울산광역시 최고장인 선정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 이듬해부터 매년 특정분야 현장에 장기간 종사하며 기술발전에 크게 공헌한 기술인들 가운데 최고 장인을 선발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숙련된 기술인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동차, 화학, 조선 등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울산시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지난 10월16일 3D프린팅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 1위인 머터리얼라이즈사와 울산지사 설립을 타진하는 등 현실로 대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꾀하고 있다. 울산지역전략산업으로도 선정된 3D 프린팅 산업은 기존 강세 기술이었던 자동차, 조선 등의 분야와 결합하여 수송기기의 경량화 부품 제작 등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의 핵심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산업 분야이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재빨리 읽어내 3D프린팅 산업을 지역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은 기술발전과 육성에 대한 울산시의 열정과 기민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 평가받고 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 열강들에게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던 조선은 독자적인 기술의 확보와 발전만이 살 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앞서 언급한 화포를 활용한 임진왜란을 비롯해 뛰어난 기술로 인해 승전보를 올린 전투가 많았던 것이다. 석유나 철 같은 천연 자원도 다른 나라에 비해 빈약한 현재의 한국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지닌 인적 자원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복잡해진 세계정세 속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많은 이들은 말한다. 그런 전략에 발맞춰 울산의 많은 청년들이 다양한 기술에 끊임없이 도전해 보시길 권한다. 능력과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기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임진왜란의 승전보만큼이나 기분 좋은 대한민국 청년들의 활약상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이병철 한국산업인력공단 울산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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