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생활을 통해 함께 어울리며
남을 배려하고 다양한 삶을 관찰
청소년기 품격을 배양하는 기회로

▲ 여창엽 울산학생교육원 교학부장

가을은 수학여행의 계절이다. 어른들이 떠나는 관광과는 달리 학창시절의 여행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현장을 직접 보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학교와 집을 오가는 일상의 길 위에서 익숙한 것들과 이별해 새로운 장소에서 처음 보는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럴 때 인간은 무딘 의식이 파닥거리고, 감각으로 인식된 현상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 알랭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여행을 생각의 산파라 하지 않았던가. 여행을 하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여행을 해야 하고 새로운 생각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학여행은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한 성장은 이전보다 많은 지식을 알게 되고 삶을 더 개방적으로 바라보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도록 한다. 새로운 곳을 여행,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학생들은 감동적인 이야기꺼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방식의 수학여행이 현장에서 정착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수학여행에 대한 기억들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많은 학생들이 단체로 버스에 우르르 올라탔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학급 단체사진 한번 찍으려고 줄지어 기다려야만 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챙겨온 술을 홀짝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잠깐 일탈을 생각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교육적 의미의 배움보다 공부로부터 해방되는 여행에 대한 기억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 학생들도 학교생활이 성적경쟁으로 시험공부에 생각이 집중돼 있다. 어느 순간 해방되는 기분으로 수학여행을 생각한다면 무의미한 향락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해방감은 학생다운 멋스러움을 유지할 수 없다.

수학여행이 성장에 도움이 되려면 학생다운 품격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우선 품격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학생의 품격은 학생다움에 있다. 학생다운 행동과 외모를 유지하는 것이 멋스러움을 지키는 것이다. 생각은 어른스러워도 행동이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른다든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보인다면 학생다운 모습이 아니다. 외모는 다른 사람들이 학생들의 품위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복장은 교복이나 간편복을 입는 것이 가장 학생답다. 간단한 티셔츠를 입어도 그들은 어울린다. 먼 훗날 사진으로 교복을 입은 모습을 바라볼 때 추억이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어른을 모방하려고 진한 화장을 한다면 순간 우쭐할 수 있으나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어리석게 보인다. 품위를 지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또한 수학여행은 삶을 배우기 위한 여행이다. 여행하면서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나 상상속의 어떤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것을 보고 관찰하고 생각하면 삶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라는 산문집에서 여행은 세상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라고 했다. 우리가 평소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보고 그것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경험이 생겨나고 삶의 지식으로 내면에 자리할 때 성장한다. 생각의 도구 중에서 가장 기본이 관찰이다. 여행지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해보자. 그 표정이 행복해 보이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저 사람들도 내 나이에 나처럼 고민을 했을까 등 표정을 관찰해보면 그 속에 내 미래를 볼 수도 있다. 버스 차장 멀리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하고 앞으로 내가 뭘 하고 살지도 생각해보자. 그러다 의문이 생기면 질문을 소중히 간직하자. 그것이 인생 공부의 밑천이 될 것이다.

수학여행은 더불어 사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삶의 품격을 생각하게 한다. 그 생각들이 한 사람의 품격으로 나타난다. 품격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그것이 여행이다. 수학여행은 인품을 형성하는 청소년 시절부터 품격을 연습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른들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찜찜한 기억들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바탕이 돼 수학여행이 품격을 가질 때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서로 어울리며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생각들이 수학여행의 품격일 것이다. 품격은 고상하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어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지만 학생들도 수학여행을 통해 품격을 연습하여 어른이 되어야 한다. 수학여행에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여창엽 울산학생교육원 교학부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