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고만으로 세상 인식 힘들어
따져보기 자제하니 새 세상이 다가와
음악에서도 법칙 찾는건 질긴 습관 탓

▲ 울산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그 옛날 해군사관학교 교관시절, 날씨가 좋은 날은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이른 아침에 진해 해군3정문을 통과해 청정바닷길을 굽이굽이 자전거를 저으며 출근하는 맛은 상쾌함의 극치다. 길섶 드문드문 해송 사이로 펼쳐지는 그 바다는 나의 몸과 마음을 늘 리셋시켜 주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아침, 동료교관인 문학 전공의 김 중위와 자전거 출근길을 같이 하게 되었다. 멀리 수평선 비스듬한 햇살이 바닷물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보며 김 중위가 말했다. “윤 중위, 너무 멋있지 않아? 마치 바다가 나에게 종알종알 아침 인사하는 거 같기도 하고, 너무도 감동이야. 진해의 아침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나는 매일 아침이 기다려져.” 내가 답했다. “아 저 흔들리는 빛들…. 저건 태양으로부터 나온 빛의 수면입사각이 너무 큰 나머지 굴절하여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공기 밖으로 반사되는 거야. 자그마한 파도들 때문에 바닷물 표면이 아주 빠른 주기로 움직이면서 입사각과 반사각이 순간순간 변하며 생기는 난반사 현상이지.” 김 중위는 나를 물건 쳐다보듯 했다. 물론 장난삼아 한 얘기였지만 분위기를 깨기에 충분했다. 내가 다시 인간으로 평가받기 위해 나는 저녁 늦게까지 그에게 술을 사고 온갖 아양을 다 떨어야 했다.

역시 어느 옛날, 사학 전공의 선배 교수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역사학이란 지나간 과거 일에 대해 그 원인과 배경을 분석하고 결국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도출해내는 학문 아닌가? 그렇다면 왜 과거와 현재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가? 왜 같은 사건 가지고도 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이 다른가?”라고 따졌다. 그는 주관을 중시하는 인문학의 방법론 등 장황한 설명과 함께 “모든 것을 객관화시키려는 무식한 공돌이하곤 대화를 못하겠다. 인간에 대해서 아는 게 무언가? 도대체 물건이나 자연현상만 가지고 노는 공돌이나 과학자가 인류역사에 무슨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는가?” 어라, 이건 전쟁 선포다. 나는 “지금 끼고 계신 안경, 오늘 아침 타고 오신 자동차, 읽고 계신 책, 아니 천정의 전등, 밥그릇, 술잔, 볼펜, 라디오, TV는 누가 만들었는가? 지난 주에 타셨던 비행기는 누가 만들었는가?”고 따졌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인용한 것은 모두 물건이었다. 아무튼 그 선배는 나를 물건 취급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나에게 저녁 늦게까지 술을 사고 이해를 도모했다.

당시 나는 매사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면 못 참아했다. 이것도 답, 저것도 답이라는 건 나의 사전엔 없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복음서를 읽을 때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를 건널 때 역풍 때문에 전진하지 못하는 장면을 바닷가에서 보던 예수가 바다 위를 걸어와 그 배에 올라타니 잠잠해졌다’라는 구절. 명색이 유체역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나는 이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 BC 212)의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요, 이를 인정하면 나의 전공체계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일이었다. 몇날며칠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비겁한 회피인지 통 큰 선택인지, 안경을 벗기로 답을 정했다.

이후 사사건건 따지는 일을 자제하다 보니,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에서 다루는 각종 인문학적 명제들이 새롭고 다정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난 음악이라는 지극히 정서적인 주제에 푹 빠져 있다. 그런데 음악을 듣고, 오선지에 콩나물을 그리고, 피아노를 띵똥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음악 안에서 수학법칙을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참으로 질긴 버릇이다.

얼마 전 중도 낙마한 신앙인 과학자 장관 후보자를 보면서, 그가 얼마나 번민했을까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울산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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