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기 만든 개혁군주 정조는
오늘날에도 개혁과 리더십의 상징
스스로 난세 평정할 ‘정조’ 돼보길

▲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군자서비스안전센터장

역사를 돌이켜 나라가 망한 원인을 살펴보면 외침이나 내란, 폭정과 부패 등 다양한 요인들을 들 수 있겠다. 2300여 년 전 진나라의 한비자는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를 남겼는데 이를 현재적 키워드로 풀어본다면 ‘법질서 문란과 시장경제의 혼란, 사치풍조의 만연과 특정계층 우대문화, 소통부재와 동맹에의 외교적 의존, 인재등용의 난맥상과 군주의 자만심, 그리고 기득권의 세습과 공적자금 낭비’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 또한 ‘원칙 없는 정치와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과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없는 상업과 인간성없는 과학, 그리고 이기적인 종교’를 ‘나라가 망하는 7가지 징조’라 설파한 바 있다. 혼란스러운 시국에 가슴 답답함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이 말들이 역사의 시공과 문화적 간극을 넘어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느낌에 동의하리라고 본다.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서는 막연하나마 ‘구세주’가 되어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대하거나 역사적으로 난세를 극복한 인물들을 떠올리게 된다. 조선조의 역사에서 성군을 꼽는다면 일반적으로 세종, 성종, 영조 그리고 정조대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선 제22대 왕으로서 23년(1777~1800)간 재위한 정조에 대해서는 IMF 직후부터 지금까지 서적과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으며 최근 화성행궁 재현행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국민적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재위기간 내내 반대세력의 집요한 견제와 갈등 속에서도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적 변혁을 꾸준히 추진한 그의 위민사상과 철학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에 절실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정약용 등 젊은 학자들을 대거 발탁, 등용하고 다양한 서적의 간행을 통해 학문분야를 의욕적으로 재건하였으며 정치적으로도 출신과 세력 중심이 아닌 인물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펼쳐 사림 붕당세력의 간섭을 배제하는 동시에 관료제를 통해 당파싸움으로 땅에 떨어진 왕권의 강화에 힘썼다고 한다.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으로 개혁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정책을 펼쳐 조선시대 최고의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문화융성기를 만들었고 사회 전반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등 많은 업적을 쌓은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오늘날 정조는 개혁과 리더십을 상징하는 인기 높은 아이콘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정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요즘의 현실을 일컬어 마치 ‘역사의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고들 한다. 예상치 못한 인과관계에 기인해 반전이 거듭되는 장면이 연출되는 드라마에서는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어느 누구도 불행한 역사의 반복은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은근히 이 시대의 난제를 해결해 줄 정조의 출현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조 이후의 조선의 정치상황과 외세의 침입, 그리고 몰락의 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역사의 데자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정조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찾아 나서거나 누군가를 이 시대의 정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조열풍’ 혹은 ‘정조미화’에 동화돼 정조의 흉내를 내기 보다는 내가 처한 문제적 현실의 해결과 맡은 바 사회적 역할에 있어 스스로 ‘진정성 있는 정조’가 되어볼 일이다.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군자서비스안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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