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휴식과 여유의 계절
퇴직 이후 생의 가을도 매한가지
들끓었던 삶에서 관조의 시간 갖길

▲ 김상곤 울산광역시 감사관

가을에는 눈으로 할 일이 많다. 빛이 눈을 어지럽히지 않아서다. 가을의 빛은 봄의 광선이 주는 들뜸이나 작열하는 여름 햇살의 어지러움도 없이 편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初秋(초추)의 陽光(양광)’이라는 고등학교 교과서 수필 속 표현을 여전히 기억하고 가을날을 대표하는 언어로 공감한다.

물론 계절마다 우리의 시선에 담긴 풍경을 나타내는 표현양식과 언어가 있다. 가령 봄의 아찔함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나는 김훈의 시선을 최고로 꼽는다. 자전거 바퀴에 의지해 이 땅 곳곳을 다니던 작가 김훈은 전군가도의 벚나무 아래에서 경험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꽃잎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에서 문명사는 엄숙할 리 없었다.”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다가갈 수 없는 봄꽃의 아득한 아름다움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의 질서를 완성하는 자연의 여정 앞에서 인간의 생각과 언어는 한없이 가벼운 그 무엇일 뿐이라는 통렬한 고백이다.

여름과 겨울은 눈으로 다가가는 계절이 아니다. 한반도의 여름과 겨울은 단색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시각보다는 추위와 더위 같은 몸의 느낌이 앞서는 계절이고, 미각으로 느끼는 여름열매의 강렬함도 시각적인 감상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가을의 시선은 어디에서도 이러한 방해를 받지 않고 편안하다. 붉게 물들어 가는 공원 주변의 가로수 길에서부터 간월재의 억새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경이 저마다의 정취를 갖고 우리를 맞이한다. 아마 그것은 비슷한 기온의 봄 풍경이 가지지 못하는 시간의 자취, 즉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봄에서부터 다시 시작된 시간의 흔적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가 가을 들판이다. 가을 들판의 탈색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그 위를 지나간 봄볕의 따가움과 여름날의 강풍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앞을 짐작하지 못하는 봄날의 풍경보다는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담고 있는 가을 풍경이 편안함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농사일의 질서 속에서 성장한 많은 사람들에게 봄날의 빈들과 가을 들판은 그 속에 포함된 과실의 여부를 떠나 확연히 다른 정서의 대상이다.

인간에게도 시간의 변화는 계절을 닮아 있다. 사계의 모습처럼 명확하지는 않을 지라도 노동과 생산의 시간을 벗어나는 시기가 오면 당사자들은 대부분 가을의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당사자들이 이 자연적인 변화를 계절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색해 하거나 무익한 패배감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퇴직을 앞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묻는다. 퇴직 후에 무엇을 할 계획은 있느냐고. 쉬지 말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사회적 다그침이다. 이러한 질문에는 가을의 휴식이나 여유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우리는 현대 문명의 특징을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제목을 빌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삶의 가을을 맞은 어중간한 나이의 그들에게 의미있는 삶의 형식은 없는 것일까. 퇴장하는 자신을 직시하면서도 불안해하지 않는 도시의 삶은 없는 것일까. 도시는 온통 열정과 힘의 노동만을 필요로 하는 곳인가.

내년부터 58년 개띠들이 직장을 떠나 아무도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도시의 공간으로 쏟아져 나온다. 아직도 더 많은 자극과 의미가 필요한 육신과 정신을 가진 이들은 이 외면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힘들어 할 것이다. 오늘도 먼저 퇴직한 선배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만두면 뭐할 거냐고. 공은 치느냐고. 그들은 아직도 무서워하고 있었다. 남아도는 몸의 시간들을. 가을은 여름과 같이 몸의 시간이 아니다. 관조와 느낌의 시간이다.

나는 의례적인 대답 대신 가을의 몸을 노래한 시를 읽는다. “비어가는 들녘이 보이는 가을언덕에 홀로 앉아 빈 몸에 맑은 볕 받는다/이 몸 안에 무엇이 익어가느라 이리 아픈가/이 몸 안에 무엇이 비워가느라 이리 쓸쓸한가/이 몸 안에 무엇이 태어나느라 이리 몸부림인가/가을 나무들은 제 몸을 열어 지상의 식구들에게 열매를 떨구고 억센 바람은 가자 가자 여윈 어깨를 떠미는데/ 가을이 물들어서 빛바래가는 이 몸에 무슨 빛 하나 깨어 가느라 이리 아픈가 이리 슬픈가.” 시를 읽는 일도 이 가을에 할 일이다.

김상곤 울산광역시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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