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건설과 탈원전은 별개
성급한 결정에 불안한 국민 적지 않아
국가에너지정책 숙의 민주주의가 필요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오늘 아침 지인이 지난 주말 통도사에 갔었다는 말과 함께 ‘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통도사에서 열리고 있는 스님들의 휴대전화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명의 스님 얼굴이 크게 담긴 ‘셀카’로, ‘도반’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카메라를 슬쩍 비켜나면서 대책 없이 웃고 있는 스님이다. 팔을 길게 뻗은 밝은 표정의 스님이 찍은 걸로 보인다. 구도에 대한 고민도 없이 그냥 재미로 찍은 셀카에 대상을 준 것은 ‘색즉심, 심즉색’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마음을 담아낸 점이 높이 평가된 듯하다. 지인은 아름다운 풍경 사진도 많은데 사람을 담은 사진이 대상을 차지한 것도, 도반(道伴)이라는 단어도 좋았던 모양이다. 도반은 불가에서 ‘진리를 구하는 길동무’로 해석된다. 세간에서는 뜻이 잘 맞는 친구,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를 흔히들 도반이라 한다. 깊어가는 쓸쓸한 가을, 새삼 가슴을 훅 치는 단어임에 분명하다.

원자력발전소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두고 한동안 전국이 시끌벅적했다. 공사현장인 울산은 말할 것도 없었다. 3개월간의 논란을 끝에 ‘숙의 민주주의’의 힘으로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재개됐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올바른 조언을 해줄만한 도반을 찾게 된다. 탈원전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후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이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는 공론화를 제안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야 차고 넘치지만 오히려 과학적 판단 보다는 평범한 국민이 더 적절한 도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문대통령의 훌륭한 도반 역할을 해냈다.

국민은 언제나 대통령의 가장 좋은 도반이다. 많은 대통령이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 문제일 뿐이다. 국민을 도반으로 생각하는 문대통령의 정치도 여기서 멈출까 걱정이다. 공론화위원회의 공론조사 결과 발표가 나오자마자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함께 탈원전 정책의 차질없는 추진을 밝혔기에 하는 말이다. 혹여 시민참여단이 원전축소를 지지했다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라면 섣부른 결정이다. 공론화위는 시민참여단의 원전축소(53.2%) 의견이 유지·확대(45.2%) 보다 많았다고 발표했다. 하나 오차범위를 겨우 넘긴 수준인데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할 경우 필요한 조치를 묻는 다른 질문에서 ‘탈원전정책 유지’는 13.3%에 불과했다고 한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참여단의 답변은 신뢰성이 높지 않다는 말이다. 게다가 정부는 애초에 신고리 5·6호기와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고 하지 않았던가.

‘탈원전’은 미래 세대의 앞날에 대못을 박는 일이다. 태양, 바람, 천연가스, 땅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유리한 자원이 어느 하나도 충분하지 않다는 엄연한 사실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불안이 잠재돼 있는 원전을 고집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요금이 턱없이 오르는 것은 아닌지, 에너지 주권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원전산업이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세간에는 대통령의 ‘탈원전정책 추진’이라는 결정적인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이 무성하다.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공론화과정을 통해 원전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높아진 우리 국민들은 이제 비로소 탈원전정책에 대한 ‘사회적 숙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신고리 5·6호기야 눈앞에 펼쳐져 있는 손익을 따져서 결정하면 되는 단순한 문제였다. 다만 문대통령의 공약이었기에 재검토를 위해 방법론적으로 공론화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탈원전으로 대변되는 국가에너지정책이야말로 진짜 ‘숙의 민주주의’가 필요한 쟁점이 아닌가. 제각각 이익을 대변하는 전문가 의견이 아니라 대통령의 도반인 평범한 국민들의 조언이 훨씬 유용할 사안이다. 시중의 분분한 사회적 숙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촛불에 의해 탄생된 문재인 정부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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