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남거성에서 고상지의 전사소식을 들은 태왕은 잠시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골인 고상지에게 무리하게 대가야의 집정이 되게 했다. 이번 전쟁까지만 버텨주면 다시 장수로 불러올리려고 했는데 안타까웠다.

결국 한 나라의 살림살이는 왕과 행정관이 맡아 다스려야 한다. 대가야의 회령왕을 죽이고 무장인 고상지를 앉힌 것부터 잘못 되었다. 패장인 아신왕과 내물마립간에게 백제와 신라를 돌려주었듯이 이사품왕에게 다시 금관가야를 돌려주고 회령왕의 씨앗인 꺽감에게 대가야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종주국이 속국과 신국에 베푸는 자비이자 질서이다.

태왕이 박지 집사에게 말했다.

“고상지 도독의 전사는 참 안 되었소. 그는 결함도 많은 장수지만 마음만은 강직했소. 내가 총애한 심복이었소.”

“오로지 폐하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가득한 분이었지오.”

박지도 반죽을 맞추었다.

“헌데 이번 전쟁에서 대가야의 후누장군은 어떻게 되었소?”

태왕은 꺽감의 양아버지인 후누 장군의 안부를 물었다.

“후누장군은 이번 전쟁에서 아신왕을 물리치고 승전한 유일한 장군입니다. 하지만 3만의 적군 앞에는 중과부적이라 가야산으로 퇴각해 그곳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음, 그럼 대가야에는 누가 주둔하고 있소?”

“고상지를 물리치고 백제의 젊은 장군 목만치가 대가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목만치라면 임나왜소의 주수 목라근자 아들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백제는 목씨들을 내세워 끊임없이 가야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구만. 그럼, 아신왕은 어디로 갔소?”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이상하게도 아신왕은 승전의 기세를 타고 신라로 진격하지 않고 다시 소백산맥을 넘어 백제 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상할 것 없소. 아신왕은 소백산맥을 넘어 옛 마한 땅에 있는 가야 6국을 점령하러 간 거요. 이번 전쟁에서 원래 아신왕이 노리던 것이 바로 소백산맥 이서에 있는 가야 땅이었소. 이사품왕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 것이오. 사냥개 같은 아신이 아사품을 부추겨 전쟁판을 벌여놓고 판돈은 자신이 몽땅 챙겨간 거요.”

백제의 아신왕은 끊임없이 고구려와 맞싸우다 패배하자 이번에는 고구려의 힘을 역이용하기로 작정했다. 가야와 고구려의 전력이 신라 땅으로 간 사이 옛 마한의 설치된 육 가야의 땅을 먹어버린 것이다.

광개토태왕은 전쟁을 통해 삼한 왕들을 자신의 발아래 굴복시켜 사국일통을 이뤘다. 하지만 백제 가야 신라 주권 독립국가가 된 지 오래인 왕국인데다 삼국의 왕들 모두가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쉽사리 말을 듣지 않았다. 사냥개 같은 백제의 아신왕, 너구리 같은 금관가야의 이사품왕, 수달 같은 신라의 내물 마립간, 족제비 같은 왜왕, 그리고 승냥이 같은 후연의 모용성까지 이들은 정복이 되어도 태왕에게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우리말 어원연구

살이. 【S】sari(사리), 【E】making liveli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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