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농가 여성 비율이 더 높아
여성농업인에 관심과 응원을

▲ 배미란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길을 걷다가 누군가에게 빼빼로 데이가 언제인지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11월11일이라는 답을 쉽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농업인의 날이 언제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면, 과연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11월11일은 빼빼로 데이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공식 기념일인 농업인의 날이다.

11을 한자로 쓰면 十一이 되고, 이를 합치면 흙 토(土)가 되기 때문에 11월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꼭 그뿐 아니더라도 황금빛 가을들녘을 가득 채운 벼 포기만 떠올려 봐도 농업인의 날은 쉽게 기억할 수 있을 듯하다.

내친김에 한 가지 더 기억해두자.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은 10월15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이 언제인지를 묻기는커녕,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도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자신이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 자신도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스스로도 잘 몰랐던 사실을 굳이 아는 척하며 꺼내는 이유는 어쩌면 세계여성농업인의 날보다도 더 알려지지 않은, 우리 근처의 여성농업인 이야기를 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농촌의 풍경과 여성농업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혹시 구슬땀을 흘리며 논일을 하는 남편과 저 멀리 남편을 위해 준비한 새참을 머리에 이고 논두렁을 걷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아닌지. 은퇴 후 인생 제2막을 준비하기 위해 귀농을 선택하는 것이 사회적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귀농하는 여성은 그저 남편의 선택에 순응해 함께 도시를 떠나는 가족구성원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시에서 일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그나마 워킹맘의 애환이라 하여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나, 농업과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농업인에 대해서는 워킹맘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여성농업인은 이미 현장과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들의 지위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016년 울산광역시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울산지역 내 농가인구 중 여성의 비율은 남성보다 더 높다. 더 단적인 예를 들자면, 농업·농촌의 상품과 시장을 창출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6차 산업에서는 여성농업인의 역할이 특히 두드러진다.

6차 산업이란, 농촌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바탕으로 농업(1차 산업)과 식품, 특산품제조가공(2차 산업) 및 유통 판매, 문화, 체험, 관광, 서비스(3차 산업) 등을 연계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말한다. 어머니들이 정성으로 만들어 낸 갖가지 반찬들과 새참, 관련 음식문화 등은 이제 그 자체로도 충분한 상품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로부터 시작되는 다양한 축제 역시 여성농업인의 노고 없이는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매년 3월10일을 ‘농산어촌여성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농산어촌 여성의 역할을 바르게 인식하고, 적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여성의 능력 활용을 한층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나, 그 날짜를 정한 이유도 눈여겨볼 만하다. 3월10일로 정한 이유는 3월 상순이 농림어업의 작업이 비교적 적은 시기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여성들이 자주적으로 활동하고, 학습하며, 상호 논의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여겨져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히 날짜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능력을 향상하고, 사회에 참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여건을 고려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깊다고 생각한다.

제자리걸음 중인 여성농업인의 지위와 권익향상 문제를 다시금 꺼내보아야 할 때, 여성농업인 스스로가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지위와 몫을 찾아나서야 할 때, 바로 지금이다. 세계여성농업인의 날과 다가오는 농업인의 날을 즈음하여,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여성농업인들에게, 나아가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많은 관심과 큰 응원을 보내주시기를 바란다.

배미란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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