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태왕이 박지 집사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세작의 보고서 건은 계속 추궁했다.

“박지 집사, 고상지 도독이 자신의 죄상이 담긴 보고서를 왜 장화황후 앞으로 올렸는가 나는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야.”

“폐하, 저는 참으로 모르는 일이옵니다. 다만 고상지 도독은 아이를 바꿔치기한 자신의 잘못이 들통 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손자병법을 아는 고 도독이 자신의 죄상을 낱낱이 장화황후에게 자백하는 고육계를 쓰는 한편, 장화황후의 칼을 빌려 자신과 연루된 사람들을 모두 죽여 증거를 인멸하려는 차도살인계를 쓴 것이 아닐까 짐작히옵니다.”

손자병법 36계중 34계인 고육계는 자신의 고통과 희생을 통해 적을 안심시킨 뒤 공격하는 것이고 3계인 차도살인계는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고육계는 적벽대전에서 오의 노장 황개가 자청하여 채찍과 곤장을 맞은 뒤 조조에게 거짓 귀순하면서 적에게 화공을 가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차도살인계는 이이제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이번 전쟁에서 백제의 아신왕도 고구려의 칼을 빌어 가야 7국을 얻었다.

태왕은 손자병법을 손바닥의 손금처럼 훤히 알고 다루었다. 박지도 손자병법에 능하니 세작을 이용하는 33계인 반간계도 능할 것이다. 태왕은 장화황후에게 세작을 보내 소후와 꺽감을 죽이려 한 자는 고상지가 아니라 박지 집사라는 걸 확신했다. 그렇다고 박지를 당장 처벌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무너진 대가야를 재건을 위해서는 박지가 가진 악마적 재주도 유용하다는 생각을 했다.

태왕이 박지에게 말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앞으로 박지 집사는 장화황후와 일절 접촉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알겠나이다.”

“박지 집사는 가야의 왕손 꺽감을 중심으로 대가야를 다시 일으켜 세우도록 하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부족한 신하지만 위로는 폐하에게 충성하고 아래로는 꺽감에게 신명을 다 바치겠나이다.”

꺽감을 모해해 죽이려 했던 박지 집사는 새로운 태왕의 령에 몸을 납작 엎드렸다.

광개토태왕은 박지에게 포로 목라근자를 데려왔다. 왜의 용병대장 목라근자는 종발성에서 이사품왕과 함께 함거에 실려 북으로 압송되어 가던 중이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이고 눈은 움푹 꺼졌으며 피골이 상접한 패자의 몰골은 처참했다.

목라근자가 누구던가. 백제장군과 용병대장, 임나왜소의 주수로 있으면서 비자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무역했으며, 신라와도 선린관계를 맺어 백제의 동남부 강역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자였다. 그는 아리수 이남에서 백제 가야 신라 왕 다음으로 무력이 강하고 재산이 많은 자였다.

광개토태왕이 포승으로 포박된 목라근자를 박지에게 인계하며 말했다.

“집사, 아신왕의 차도살인계에 이용당해 죽은 목장군을 다시 살리고, 가야도 살려 보시오.”

 

우리말 어원연구

가야의 지역으로 비자벌(창녕) 남가라(김해) 탁국(경산) 안라(함안) 다라(합천) 탁순(대구) 가라(고령)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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