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바탕으로 한 정보·재미 전달
공영방송 본연의 책임과 역할에 충실
권력에서 자유로운 진실 전달자 기대

▲ 이근용 와이즈유(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공영방송 파업이 2개월을 넘어가고 있다. ‘공범자들’ 영화 덕분에 지난 9년동안 공영방송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상당히 알려졌다. 지난 2주 동안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된 이 영화의 조회 수가 230만을 넘었으니 23만명 안팎의 유료 관객수의 10배가 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 셈이다.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방송 파업을 둘러싸고 여야간에 책임공방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권을 두고 설전이 이어졌다. MBC가 공영방송인가에 대해서 이견이 없지 않으나 공익법인이 대주주라는 점에서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공영방송이라고 여겨져 왔다. 케이블방송이나 IPTV와 같은 유료방송과 달리 지상파방송, 특히 공영방송은 방송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더 엄격한 규제를 받아 왔다.

지상파방송사 기자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시민들이 ‘기레기’라고 질책을 가하는 것은 그만큼 방송의 역할에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유료방송에 시청자를 빼앗기고, 광고수입은 모바일, 인터넷, 케이블방송 광고에도 뒤져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는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현대사에서 정치권력과 미디어, 특히 방송은 통제, 순치, 긴장, 저항의 관계를 반복하며 길항작용을 거듭해 왔다. 방송사 내부적으로는 경영층과 일선 기자, PD들이 갈등과 타협, 해직과 파업 같은 진통의 과정을 거치며, 공영방송의 공정성, 공익성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공영방송은 문화적으로도 부침과 수난, 융성의 물결을 타면서 대중문화의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다. 80년대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통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동포들에게도 눈물과 감동을 안겨주고, ‘겨울연가’ ‘대장금’같은 드라마, K팝으로 한류 바람을 일으키며 역사의 고비마다 위안과 웃음을 안겨준 공영방송의 역할은 평가받을 만하다.

공영방송 파업을 푸는 실마리가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 클로테르 라파이유의 ‘컬처 코드’ 개념을 접하게 됐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컬처 코드란 우리가 속한 문화를 통해 자동차, 음식, 관계, 나라 등과 같은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 의미다. 예를 들면, 프랑스어로 태양은 남성명사인 ‘솔레이’인데, 프랑스인은 솔레이 하면 곧 태양왕 루이 14세를 연상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연관성이 각인된 프랑스인은 태양을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인 남성으로 인식한다. 여성은 달을 뜻하는 여성명사인 ‘룬’과 연관된다. 독일인에게는 이 단어들이 반대의 의미를 나타낸다. 독일어에서 태양을 뜻하는 ‘존네’는 여성형이며, 독일인은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사물을 자라게 하며, 아이를 기르는 존재로 여성을 생각한다. 독일에서 남성은 밤이고, 어둠이며, 달이다. 달을 뜻하는 ‘몬트’는 남성형이다.

라파이유는 이 개념을 적용해서 ‘포춘 100대 기업’을 비롯해 세계 주요 기업들을 위해 30여년간 300회 이상 ‘각인 발견 작업’을 수행해서 <컬처 코드>라는 책을 출간한다. 그는 SUV차량인 지프 랭글러에 대한 유럽인들의 코드가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군들이 몰고 온 지프를 연상해서 ‘해방자’이고, 용변 후 화장지를 혼자서도 잘 사용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이 더 이상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어린 시절의 각인 탓에 미국인의 화장지에 대한 코드는 ‘독립’임을 밝혀냈다. 문화권마다 다른 컬처 코드를 찾아낼 수 있다면 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라파이유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영방송 문제로 다시 돌아와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구조 개혁을 반복하는 행태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우리가 공영방송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이유는 공영방송이 지방과 조정의 소식을 전하던 ‘기별’ 삶의 지혜와 재미를 구수하게 전해주던 ‘이야기꾼’의 전통에 각인된 ‘진실’이라는 컬처 코드를 담고 있음을 놓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공영방송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실의 전달자이길 원한다.

이근용 와이즈유(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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