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적용 안돼 질낮은 제품 사용
유해성 논란서도 자유롭지 못해
기저귀산업 발전 관심·지원 필요

▲ 손덕현 이손요양병원 원장

지난 8월 한 시민단체가 생리대에서 독성물질인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되었다는 발표가 있었고 이로 인한 유해성 및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생리대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감도 커졌고 해당되는 한 회사는 전 제품을 회수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소란이 일어났다. 제 2의 가습기 사건으로 여겨지면서 생리대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외국제품을 직구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화학제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노케미(No Chemi)라는 단어가 유행했고 그에 따라 천연 면생리대를 생산하는 업체는 주문이 마비될 정도였다. 눈높이가 올라간 소비자의 안전기준을 정부가 따라잡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과도한 공포감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사회불안을 초래했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유아의 기저귀까지 번졌다. 생리대와 기저귀는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고 비슷한 원재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기업측에서는 “생리대와 기저귀를 생산하는 공장은 같지만 다른 공간에서 제조하고 있다”며 “기저귀를 만드는 원료도 생리대와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필자로서는 이 사태를 보면서 노인들의 기저귀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문제가 노인들의 기저귀까지 번지지 않았다. 아마 노인의 문제는 관심의 후순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에게서 기저귀는 어떤 의미일까. 노인세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기저귀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노인에게 기저귀는 단순히 대소변을 받아내는 하나의 소모품의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대개 기저귀는 영아들이나 유아에서 사용한다. 용변을 스스로 가리게 되면 자연 기저귀와는 멀어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장애를 가지게 되거나 노인이 되어 거동이 불편해져 기저귀를 차야만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때 기저귀는 절망감을 안겨주는 것일 수 있다. 기저귀를 차야하고 치부를 남에게 드러내어야만 하는 삶에 대한 회의에 빠지는 노인들을 종종 보게 된다. 치매를 가진 노인들은 기억과 감각을 점점 상실하게 되지만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정이 수치심이다.

어느 책에서 본 글이다. 호주의 한 노인홈(우리의 요양원에 해당)을 방문했을 때 이 시설은 기저귀를 하고 있는 노인이 한 분도 없었다. 주간 배설케어 시간에는 간병인이 양쪽 겨드랑이를 잡고 지탱하면서 화장실까지 모시고 가고, 이동식 변기에 앉히는 방법을 사용하고, 야간에는 침대에 누운 채로 이용할 수 있는 변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용변이 나오는 경우에는 지체없이 시트와 잠옷을 교환해 준다. “왜 기저귀를 이용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들의 답은 “일단 성인이 된 사람에게 기저귀를 채우면 존엄성이 훼손되고 삶의 활력이 없어진다”면서 “전문가의 입장에서 기저귀를 채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4무2탈 존엄성케어(냄새무, 욕창발생무, 낙상발생무, 신체구속무, 탈기저귀, 탈침대)로 탈기저귀를 실천하고 있다. 탈기저귀는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줄 수 있지만 정말 힘든 과정이다. 눕혀놓고 기저귀를 채우면 훨씬 편하다. 관리인력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화장실로 데려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고 이동시 낙상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탈기저귀를 실천하려면 직원들의 참여와 공감이 필요하다. 입원 초기 환자의 배뇨·배변습관을 잘 파악해 그에 맞게 시간을 조절하면서 화장실로 가도록 보조해야 한다. 실제 이러한 운동을 통해 기저귀를 사용하지 않게 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감동적이다. 차마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지도 못했고 인생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탈기저귀를 경험하고 나서는 삶의 희망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일본은 기저귀 산업이 많이 발전돼 있다.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 보험적용이 돼 가족의 부담도 적고 또한 제품도 다양하고 고급화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나 보호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렇다보니 값싸고 질이 낮은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에서 노인의 기저귀도 사실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렇다보니 기저귀산업도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생리대 못지않게 노인 기저귀의 품질과 안전성도 중요하다. 이러한 산업도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손덕현 이손요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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