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생에 괄호를 닫는 것은 실례다

제 이름 옆에 활짝 열어둔 괄호
그것은 언젠가는 닫히고야 마는 문이다

지난주엔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오래 열어 둔
문을 닫았다
어제는 서른 갓 넘은 한 사람이 쿵, 하고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의지로 불가능한 게 많은 삶처럼
괄호 또한 그래서
닫고 싶을 때 닫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조금 빠르거나 조금 늦을 뿐 누구나 닫아야 하는 괄호

한번 닫힌 괄호 속은
이가 잘 맞는 옹관묘처럼 고요하다

▲ 엄계옥 시인

연명의료결정법이 내년에 시행된다고 한다. 평화로운 죽음은 삶만큼 중요하다. 아침부터 웬 죽음 얘기냐고 할지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죽음을 음침하고 으스스한 것으로 대면하길 꺼린다. 죽음이 왜 그토록 무서우냐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인간이 갖고 태어난 공통 운명체다. ‘설마 내게 그런 일이!’가 어느 날 느닷없이 내 앞에 닥쳤을 때 허둥지둥 작별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게 우리다. 사유가 깊은 시다. 삶과 죽음이 한 몸이란 걸 이처럼 잘 표현한 시도 드물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느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겨야 할 게 인생의 허망함뿐이라면, 앞문만 바라보느라 뒷문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서다.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멸한다. ‘조금 빠르거나 조금 늦을 뿐’ 늘 한쪽 문이 열린 상태다. 그 문은 언제 닫힐지 모른다. 언젠가는 정면으로 마주할 게 죽음이라면 미리 대비하고 살아야 삶을 아름답게 완성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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