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

거련은 태왕이 가르친 손자병법을 가슴에 간직했다. 후일 거련이 장수왕이 되어 백제 개로왕을 상대로 반간계와 미인계를 쓴 것은 어릴 적부터 부왕으로부터 손자병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장화황후는 황후전에서 소후 여옥과 꺽감을 가야로 내려 보내기로 결정한 소식을 듣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에 염려가 되었다.

‘폐하의 총애를 독점한 여우같은 여옥이 눈앞에 사라지다니, 삼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구나. 허나 두 모자가 가야를 틀어쥔다면 태자 거련에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닌 것이다.’

장화황후는 머리에 나비잠을 꽂고 황후복을 갖춰 입고 태왕에게 나아가 말했다.

“폐하, 불여우 여옥과 영악한 꺽감을 가야로 내려 보내면 장차 거련의 적이 되고 고구려에 큰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태자 거련에게 삼배구고두의 노객의 예를 한 뒤 보내도록 하세요.”

“당신의 질투가 너무 심한 것 아니오? 불가에서는 헤어질 때 꽃을 뿌려주는 산화공덕도 하는데 그리 모질게 보내면 되겠소?”

“당신은 세상을 정복한 강한 남자인지 몰라도 여자와 아이에게는 삶은 무처럼 물러요.”

“허허, 무슨 그런 소리를. 난 지금 바쁘오. 바깥에 5만의 보기군이 기다리고 있소. 곧 후연의 모용성을 치러 올라가야 해요.”

“잘 됐군요. 당신과 군대 앞에서 삼배구고두를 시키시지요.”

“음.”

광개토태왕은 고민을 했다. 황후의 말이 단순히 소후에 대한 질투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린 거련의 보위가 염려되는 건 태왕도 마찬가지였다. 물고 물리는 이 전국시대에 거련이 자신의 위업을 온전하게 계승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그 때문에 태왕은 정복국의 질자를 불러 모아 항상 고구려 중심의 제왕학을 가르치며 태자 거련에게 충성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했다.

가야의 질자 꺽감은 건강하고 총명하고 용맹한 데다 발톱까지 숨길 줄 아는 보라매와 같은 녀석이다. 이 녀석을 가야의 하늘에 풀어놓는다면 장차 가야를 기반으로 고구려에 대적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황후의 말대로 거련의 적이 되고 고구려에 우환거리가 되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서궁에는 출진하기 전의 5만의 보기군 병사들이 집결해 있었다. 모든 부하와 병사들이 볼 수 있도록 천단을 만들고 그곳에 태자 거련을 좌정시켰다.

거련의 옆에 선 광개토태왕이 단 아래에 있는 꺽감에게 말했다.

“꺽감은 태자에게 노객의 맹세를 하고 태자에게 삼배구고두를 하여라.”

“예. 저, 꺽감은 영원히 거련 태자의 노객이 되며 그의 명에 복종하겠습니다.”

꺽감은 큰 절을 세 번하고 이마를 돌바닥에 아홉 번을 찍었다. 꺽감의 여린 이마에 피멍이 맺혔으나 전혀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의례만 끝나면 꿈속에 그리던 고향 대가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나비. 【S】navi(나비). 【E】silkworm,
a noble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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