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고고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들의 삶, 우리의 삶을 말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살아온 흔적 그리고 살아가는 흔적을 찾고 연구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최근 함안의 성산산성이라는 유적에 대해 자료를 정리하다가 사람이 산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성산산성은 삼국시대 산성으로, 신라가 가야지역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 588년경에 쌓은 석성이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축조한 성의 절대연대를 근사치라도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경이로운 일이다. 몇 년이라는 절대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의 출토야말로 신기루를 보는 것에 견줄 만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

함안의 성산산성은 일찌감치 중요성이 알려져 국보 제67호로 지정되었고 1998년부터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성의 구조와 축조방법, 3곳의 문지, 중요한 성 내부시설인 건물지와 저주시설 그리고 수많은 유물들. 이들을 살피고 있으니 그 시절로 들어가 있는 착각에 빠진다. 성을 축조하느라 인근의 경상도지역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에 대한 정보와 이 시대의 지명, 성의 구조와 역사 등을 담은 행정기록인 목간이 무려 310여점이나 출토되었다. 그 중 250점에는 지명, 인명, 곡물명 등을 묵서로 기록해 두어 사실감과 현실감이 극에 달한다.

▲ 목제접시, 직경 16.4㎝, 함안성산산성출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복천박물관, <목기>에서 발췌)

농기구, 공구류, 용기류, 생활구, 제사구, 결구부재 등도 다량 출토돼 마치 그들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도 싶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살아보지 않은 그 시대의 삶의 현장에 머무는 순간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고고학은 이런 것이다. 있었으되 있지 않았던 듯 싶은 추억할 수조차 없는 순간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학문. 나는 오늘 둥그런 나무접시에 탐스러운 감을 듬뿍 담아들고 이웃을 찾는 신라의 억척스러운 한 아낙으로 산다. 함안의 성산산성이 내게 준 가을선물인 듯이.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