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태왕은 사랑하는 소후를 가야로 보내며 말했다.

“소후, 잘 가시오. 이번 남정은 대가야에게 큰 기회를 준 것이오.”

“폐하께서는 금관가야와 왜로부터 신라를 구하기 위해 남정을 한 것 아닙니까. 그 때문에 대가야는 오히려 백제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오. 내가 가야의 맹주였던 금관가야를 무너뜨리고 이사품왕을 포로로 잡아 놓았소. 가야의 맹주가 없는 지금 소후와 꺽감이 내려가서 대가야를 회복하면 바로 가야제국의 맹주가 될 것이오. 그것이 기회라는 것이요.”

“하지만 목만치가 대가야를 점령하고 있지 않습니까.”

“종발성에서 포로로 잡은 목만치의 아버지 목라근자를 박지에게 내주었소. 목만치는 아버지 목라근자를 의식해 어쩌지 못할 것이오. 잘 가시오. 난 북으로 올라가 모용성을 죽이고 그 군대를 7백리 밖으로 몰아낼 것이오.”

“폐하, 부디 몸조심하세요.”

소후는 꺽감과 함께 태왕에게 큰절을 했다.

꺽감은 마지막으로 거련과 상희, 백제 공주 다해와도 작별인사를 했다. 거련과 꺽감, 상희와 다희는 지난 5년 동안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며 지냈다. 선 머슴애 같은 고구려 공주 상희는 꺽감을 드러내놓고 좋아하며 따라다녔다. 꺽감에게 맛있는 먹거리를 곰상스럽게 챙겨주고 귀한 선물도 했다. 하지만 광개토태왕의 딸이자 거련의 여동생인 상희와 가야에서 온 질자인 자신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었다. 꺽감이 상희와 함께 뒹굴면 상희의 호위무사들이 ‘저, 미천한 것이 감히 우리 공주를 범하려고 해’ ‘저 미개한 가야자식이 무슨 짓을 하는 거야’라며 호통을 쳤다. 상희는 질자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구려 공주였다.

꺽감의 속마음은 백제공주 다해에 가 있었다. 살결이 가무잡잡하고 성격이 보리처럼 억센 상희와 달리, 다해는 얼굴이 해끔하고 피부가 쌀알처럼 투명하게 비칠 정도였다. 눈이 크고 마음도 상냥해 질자로 끌려온 남자애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꺽감도 다해를 보면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백제공주 다해 곁에는 늘 거련이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오늘 헤어지는 마당에도 거련이 다해를 옆에 두며 눈 밝은 감시를 하고 있었다. 방금 거련에게 삼배구고두의 노객 의식을 치른 꺽감은 감히 다해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헌데 다해가 꺽감에게 다가와 준비한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예상 밖의 행동에 꺽감은 기분이 얼얼했고 거련은 기분 나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광개토태왕이 두 팔로 거련을 들어 올려 말에 태우며 말했다.

“꺽감, 어머니와 함께 가야로 내려가 목만치를 물리쳐라. 거련, 너는 이 애비와 함께 북으로 올라가서 모용성을 무찌르자.”

태왕은 5만의 군사와 함께 북으로 올라갔다. 소후와 꺽감은 남으로 향했다. 꺽감은 걸어가면서 다해가 준 꽃목걸이의 향기를 맡았다. 다해의 따뜻한 눈길과 감미로운 입술이 꽃향기와 함께 알싸하게 배여 걸어도 걸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말 어원연구

대가야: 현재의 고령. 광개토태왕과 고구려군이 가야제국의 맹주인 금관가야(김해)를 파괴해 현재 가야의 맹주는 사라지고 무주공산인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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