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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강영환의 건축과 문화
[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16)]인도네시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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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9  22: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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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천루를 향한 욕망 - 여러 개의 사원이 군집을 이룬 거대 사원군 프람바난. 광활한 밀림을 뚫고 솟아오른 시커먼 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밀림 속의 숨은 고대문명 프람바난
동시대 것으로 보이는 힌두·불교사원
마술처럼 경이로운 유적 군락 이뤄
    
로로 종그랑 힌두사원 중심부에 있는
높이 47m의 거대한 석조 탑 3기는
불꽃처럼 하늘 향해 솟구치듯 서있어
    
지배자의 끝없는 권력과 군림 욕구는
도시공간 독점하려는 마천루와 흡사


보꼬 왕궁 유적에서 케두 평원을 내려다보면 산맥사이로 펼쳐진 광활한 밀림이 융단처럼 인도양을 향한다. 그 밀림을 뚫고 솟아오른 시커먼 탑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형태와 높이는 가히 충격적이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닭살이 돋을 만큼 소름 끼치는데, 이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어떠했을까? 프람바난(prambanan), 그것은 이 밀림 속에 숨어있는 인도네시아 고대문명의 표지 석에 불과했다.

프람바난은 하나의 사원이 아니다. 여러 개의 사원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사원 군이다. 다가가면 갈수록 신비로운 유적들이 밀림 속에서 마술처럼 나타난다. 힌두교 사원도 있고, 불교 사원도 있다. 이것들은 거의 동시대에 건설된 것이다. 7, 8세기에는 이러한 종교적 병존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날 천주교 성당 옆에 개신교회가 세워져 있는 것 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프람바난 사원군 안에서 가장 경이로운 유적은 ‘로로 종그랑(Loro Jongrang)’ 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을 갖는 힌두교 사원이다. 이 사원 하나만 해도 237개의 탑군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규모를 갖는다. 그 중심부에는 높이 47m에 이르는 거대한 석조 탑 3기가 마치 불꽃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서있다. 기가 질릴 만큼 위압적이다. 각기 힌두교의 트리무르티(삼신일체)인 브라마, 시바, 비쉬누 신전이다. 각 신전 앞에는 그들이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 Nandi(황소), Angsa(거위), Garuda(독수리) 신전이 자리한다. 각 신들의 신전과 함께 그들의 교통기관마저 신격화한 이 사원의 모습은 대단히 직설적인 신앙의 표출이다.

프람바난 사원군은 캄보디아 앙코르의 유적을 방불케 한다. 규모나 형식이든, 장식에서든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힌두 삼신 탑은 앙코르 어떤 사원의 탑보다 더 거대하고 장식적이다. 그것은 조형물인 동시에 내부공간을 갖는 건물이다. 짙은 암갈색의 화산암을 15층 높이로 쌓아 만든 탑이며, 몇 단의 기단을 올라서야 감실로 들어설 수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어두운 감실 속에서 슬며시 나타나는 신상의 연출은 경외심을 고조시키는 기법이다.

벽면에 새겨진 부조들은 단지 그들의 예술적 기예나 건축적 장식성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림으로 설명된 경전이다. 거기에 브라마의 창조신화가 설명되고, 시바의 다양한 성격이 묘사되며, 비쉬누의 여러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물론 왕들의 영웅적 서사도 슬며시 끼어든다. 문자해독이 자유롭지 않은 서민들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신앙적 텍스트는 없었으리라. 도대체 누가 왜 이 밀림 속에 이처럼 경이로운 유적을 남긴 것인가?

'로로 종그랑'이라는 이름은 이 사원의 건립과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신이 아니라 보꼬 왕의 딸이었던 공주의 이름이다. 보꼬 왕국을 멸망시킨 후 반둥 왕자는 공주에게 청혼했으나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시집갈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하룻밤에 천개의 사원을 짓는다면 승락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왕자는 귀신을 부려 999개 까지 사원을 만들었으나 새벽 닭을 일찍 울게 한 공주의 꼼수에 속아 귀신들이 달아나자 조건을 채우지 못했다. 분노한 왕자는 저주를 내려 그녀를 시바 탑의 두르가 신상으로 변하게 했다. 프람바난 사원 군에 속한 세부(Sewu) 사원은 바로 ‘천탑 사원’으로서 그 공주를 위해 만들었다는 불교 탑 군이며, 로로 종그랑 사원의 중심 탑인 시바탑 안에 조성된 두르가 신상이 바로 그 공주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신화로 포장된 역사의 증언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이 땅에는 종교적 배경이 다른 두 왕가가 중부 자바의 지배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누가 이기든 사회적 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종교적 화해와 승자를 위한 기념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거대한 사원의 건립은 종교적 경외심 뒤에 숨어있는 왕의 신성한 권위를 상징한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그러나 신의 존엄도, 왕의 권위도 거대한 건축으로만 지켜질 수는 없는 법. 백성들이 지키지 않는 한 시간 속에 폐허가 되기 마련이다.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구치려던 지배자들의 욕망은 멀리 바벨 탑의 시대로부터 오벨리스크와 미나렛, 고딕성당의 첨탑을 거쳐 오늘날 마천루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거기에는 종교적 함의나 제의적 수단, 경제적 목적 등 그럴듯한 이유가 포장되어 있으나 권력과 군림을 표상하려는 저의는 숨길 수가 없다.

오늘날의 마천루는 경제를 통한 군림의 또 다른 표상이다. 자본은 마치 잭이 심은 콩나무처럼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사유재산권 행사라는 무소불위의 권리를 내세워 도시공간을 독점하려 한다. 도시를 주변의 자연과 괴리시키고, 교통과 에너지를 빨아드리며, 방대한 음지를 만들고, 도시경관을 압도하여 군림하려 한다. 역사학자 전유용은 오늘날 마천루가 ‘돈이 가장 신성한 시대, 지름신이 최고신인 시대의 표상’이라고 표현했다. 건축은 건축주의 수명보다 길게 마련이다. 오늘날의 내 허영이 후손들에게 쓰레기로 남지 않을지 숙고해 볼 일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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