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아신왕은 광개토태왕의 서신을 읽고 육가야에 내려간 병관좌평 진무를 위례성으로 불러 올렸다.

“진무 장군, 우리가 차지한 가야 땅은 평안한가?”

“원래 마한에 속했던 백성들이라 쉽게 우리 백제의 풍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덕유산 너머 대가야의 민심이 불안할 따름입니다.”

“과인도 대가야 때문에 장군을 부른 것이야.”

아신왕은 진무에게 태왕의 서신을 주었다. 진무는 글을 읽으면서 숯덩이처럼 짙은 눈썹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진무가 주먹을 부르쥐며 말했다.

“대가야를 내놓으라는 이런 오만방자한 글을 감히 대왕님께 쓰다니요!”

“하지만 지금 고구려가 쳐들어온다면 우리가 당키나 할까?”

“그런 일은 천만 없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천하의 광개토라 한들 두 번의 전쟁에서 지친 병사들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올 수는 없습니다. 내려오더라도 우리의 무력으로 충분히 쳐부술 자신이 있습니다. 이 서신의 글은 삼진칠허의 허풍에 불과하옵니다.”

진무는 광개토왕이 바보가 아닌 이상 병사를 마소 다루듯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신왕은 안심할 수 없었다. 광개토태왕은 상식을 뛰어넘는 기이한 병법으로 승리를 구가해왔다. 남쪽 끝의 종발성을 치는가 했더니 어느새 북쪽 끝의 남소성을 쳤다. 역병 같은 그의 군대가 지금이라도 당장 아리수를 건너 대가야를 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아신왕은 이제 광개토 군대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났다.

“이 서신 중에 가장 염려스러운 말은 대가야에 뇌질왕가를 회복시키겠다는 말이야. 그렇게 되면 민심이 사백 년 종통의 뇌질왕가로 기울게 되지. 민심이 떠난 땅에서 객장인 목만치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아신왕은 남쪽 하늘을 바라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밤 중 가야산의 군막에서는 은밀한 군사들의 이동이 있었다. 목만치로부터 하 세월 답을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후누 장군이 박지 집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후누 장군은 천험한 요새이자 어라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주성을 공격 목표로 정하였다. 주산성이 에워싼 주산 능선에는 뇌질왕가의 무덤들이 늘비해 있어 상징성이 있었다. 대가야 병사들은 모두 융복을 입었다. 주성에는 백제군들이 삼백 명 가량 주둔해 있었다. 검은 융복을 입은 병사들의 움직임은 어둠 속에서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았다. 군사들은 성벽에 사다리를 놓고 성안으로 잠입해 단숨에 백제군을 제압하고 주성을 점령해 버렸다.

성에 대가야의 깃발인 삼엽기가 걸리고 횃불이 오르자 사기가 충천한 병사들은 ‘대가야 만세! 꺽감왕 만세!’를 불렀다.

 

우리말 어원연구
삼진칠허(三眞七虛). 십 중 삼이 진실이고 칠은 거짓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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