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소리가 없다.
은둔하는 군자(君子)처럼.

저 높은 산꼭대기에 빗방울로 떨어져
나무등걸과 돌자갈과 바위틈에 깨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삶의 고통을 호소했는가?

-중략-

먼먼 길 걸어오면서도
속으로 울음 감출 줄 아는 성숙한 여인.

그러니 그대, 고요한 밤에 혼자 오려무나
소리를 삼켜버린 군자처럼

한 잔의 술을 마주 들고
무르익은 저 삶의 강물소리를
달빛 띄워 같이 마시려거든.

▲ 엄계옥 시인

울림이 깊은 시다. 시인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인생을 사유한다. 이 시는 물방울과 인간의 항로(航路)를 하나로 본 것. 비록 한 방울의 물방울로 태어났으나 물방울의 꿈은 컸다. 강물이 되는 거였다. 하나의 물방울이 큰 강이 되기 위해서는 숱한 난관을 거쳐야 한다. 안이 맑고 투명한 물방울은 제 안에 우주 만물의 목숨 어루만지는 손길 놓지 않고 수만 리 길을 나선다. 중간에 포기할까 한 적도 더러는 있었을 것이다. 잘못 든 길에서 헤맨 적도 있었을 것이고, 폭포라는 위험이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도랑을 넘고 개울을 건너 간난신고 끝에 당도한 강이니 ‘삶이 익을수록’ 깊은 침묵에 잠긴다. 큰 강은 그래서 도도하면서도 잠잠하다. 물방울들의 꿈이 모인 곳이니 넓고 깊다. 물방울과 내가 하나이니 달빛 띄워 마시는 물맛이 달콤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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