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약방문 같은 사건 현실에 많아
법적분쟁도 예방하면 막을 수 있어
소송으로 가기전 피할 것은 피해야

▲ 서영효 울산지법 부장판사

매번 재판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건’이 많다고 느낀다. 겨울철 독감예방처럼, 법적 분쟁도 소송으로 오기 전에 미리 예방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만은 피할 수 있다. 아래의 글은 필자가 읽은 어느 수인(囚人)의 수기이다. 큰 틀은 도스토옙스키의 글에서 빌린 듯. 수기를 읽고 어떤 법적 예방책을 마련할 지는 독자들이 판단하기를 바란다.

“우리 아버지는 돼지만도 못한 인간이야.”

내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부친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면서 당신 첫사랑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목청을 높이곤 했다. 재혼한 부친은 동생 둘을 더 낳았으나, 새어머니도 단명하셨다. 부친은 많은 재산을 모으고도 내게는 겨우 먹고 살 돈만 주고, 둘째에게 사랑을 퍼부었다. 그 덕에 둘째는 여러 사업에 손을 댔으나, 항상 사기꾼, 아첨꾼이 끼면서 수십 억 빚만 졌다. 결국 부친도 포기하였다.

지금까지 나는 술과 싸움질을 일삼았다. 내 안의 분노를 잠재울 수가 없어서. 그러면서 술에 취해 ‘언젠가는 돼지 목을 따버릴 거야’며 떠들어 댔다. 수감된 내내 그날 일만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더 이상 자식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늘그막에 다시 젊은 여자 얻어 내 젊음을 보상받겠다’며 부친은 술집 마담과 꽃놀이를 다녔다.

그날도 나는 돈을 받아내러 집에 갔다가, 부친의 여자 타령에 분노가 치밀어 평소 소지하던 공구용 칼을 꺼내 들이밀면서 따졌다. 부친도 흥분하여 ‘애비에게 칼까지 들이미는 너는 사람도 아니다’며 나를 내쫓으려 했다. 그 순간 칼이 부친 목을 스쳤다. 당황한 나는 칼을 떨어뜨린 채 집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체포되었다. 며칠 후 밝혀진 부친의 사인은 목의 좌상이 아닌 질식사였다. 면회 온 집사 말로는, 내가 오기 전에 둘째도 집에 왔다가 부친과 싸우고 돌아갔는데, 다음날 새벽에 보니 주방 뒷문이 열려있더란다. 뒷문 열쇠는 부친과 자신, 그리고 둘째만 알고 있고, 부친 방의 금고도 열려 있었다고.

내일이 부친살해 재판의 첫날이다. 언론에서는 온통 돈에 눈이 멀어 패륜범죄를 저질렀다고 난리다. 사실 부친이 죽으면 그 재산은 전부 내 차지였다. 셋째는 하느님께 귀의하여 재산욕심이 없고, 둘째도 빚이 많아 법원에 ‘상속포기 신청’을 내려 했다. 빚쟁이를 피해 둘째가 ‘상속재산분할협의’로 상속분을 장남인 내게 돌리면 민법상 ‘사해행위 소송’을 제기당하니, 합법적으로 상속포기 신청을 하라는 법률상담도 받았다. 감방 동기들은 벌써부터 <양형기준>을 갖다놓고 형량을 분석하기 바쁘다. 동생들로부터 탄원서를 받아라, 우발적 범행이다, 법정에서 부친 죽음을 애통해 하라, 부친 유산을 포기하라는 등 떠들썩하게 모두들 한마디씩 하며 자기 의견을 내세웠다.

그러나 내 마음은 줄곧 다른 데 가 있었다. 내가 수감된 후 자주 면회 온 둘째는 그날 일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그런 동생을 보면서 말렸다. ‘돼지 목을 따버리겠다’는 내 바람대로 됐으니 누구를 탓하겠느냐. 언젠가 셋째는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고 했는데, 나의 영혼 깊은 곳에서는 ‘나도 결국 똑같은 살인자다’는 울림이 느껴왔다. 어제 밤에는 얼굴도 뵌 적 없는 어머니가 아이를 안은 채 나를 내려다 보며 웃고 있는 꿈을 꾸었다. 마침 오늘 오후에는 간수에게 부탁한 성경책이 들어왔다. 여전히 떠들어대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조용히 ‘복음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법정에 도착하여 대기실에 앉았다. “피고인 허자백씨, 들어오세요.” 판사의 호명이 들리고 간수가 수갑을 풀어 주었다. 나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법정으로 들어섰다.

서영효 울산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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