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중앙정부 권한 이양이 아닌
입법·행정·재정권의 획기적 확대
자생력 확보로 지역 경쟁력 키워야

▲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지난 1990년대 초반 관·학·정계에 어린애를 언제 해수욕장에 들어가도록 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한편은 수영을 완전히 익히도록 한 뒤에 들여 보내야 한다고 했고, 한편은 어느 정도 기초만 익힌 후 들여 보내면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주장이었는데, 의회만 구성돼 있는 반쪽 지방자치가 아닌 완전한 자치, 즉 단체장의 민선제 도입시기에 대한 논란이었다. 공방 끝에 후자가 승리, 1995년도에 민선단체장 체제가 출범했다. 그러면 완전한 지방자치가 되었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태생적으로 제도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되었음에도 그 동안 근본적인 개선 없이 필요한 부분만 조금씩 손질하면서 운영되어온 것이 사실이며, 땜질식의 제도개선으로는 성숙한 지방자치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역대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하고 추진기관을 운영했건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무엇을 개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연구를 통해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돼 있다. 지난 10월26일 대통령도 밝힌 바와 같이 자치입법, 자치행정, 자치재정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필요할 때 가끔 강조만 했지 실질적인 분권을 위한 세부과제들에 대한 점검과 추진 독려는 사실상 없었다. 따라서 대통령이 진정 지방분권을 바란다면 이에 필요한 세부과제별 추진상황을 각 부처 장관에게 직접 계속 챙겨야 할 것이다. 행정자치부만이 아니다. 실제 지방분권의 저항세력은 다른 부처들이다.

다음은,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자치재정권을 확대하기 위해 지방세의 비율을 현재 총 세입의 20%에서 30% 나아가 40%로 확대할려고 하는데, 현재 거론되고 있는 바와 같이 일부 국세를 지방세로 그대로 전환할 경우 지역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 심화 우려로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반대해 법령을 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지방이양총괄법’이 속히 제정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국가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절차는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서 이양대상으로 의결해 소관부처로 통보하면 해당부처에서 법령을 개정해야 하는데 중앙부처의 소극적 대처 내지는 반대로 이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처럼 이양대상 업무들을 한 법령으로 묶어 개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인데 속히 제정되도록 청와대와 정부가 적극 대처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는 공무원들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필자는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실무위원으로 참여했었는데, 지방이양 대상업무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이양 반대의 논리로 일관되게 내세우는 것이 국가 전체의 통일성 훼손 문제다. 획일적인 통일성보다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각 지역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살리자는 것이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인데 기본 인식부터 문제가 있다. 더구나 현재 지방자치에 대한 학술행사나 교육에 자치단체 공무원들만 참석하는데 정작 교육을 시킬 대상은 중앙부처 공무원들이다. 자치단체 공무원들도 이양시 예산과 인원문제를 먼저 걱정해 소극적으로 임하기보다는 권한 이양을 요구하면서 재정분권을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지난 10월29일은 제5회 지방자치의 날이었다. 우리 국민, 아니 공무원 중에서 얼마나 이 날을 알고 있었을까? 한국 지방자치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지방자치의 발전은 중앙권한을 지방에 넘겨 준다는 단순한 분권적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조류에 따른 국정운영의 패러다임 전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지방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양해 지역이 자생력을 가짐으로써 지역 경쟁력을 확보하고, 중앙은 국가 차원의 정책과 제도에만 전념할 때 국가 전체의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가능하고 또 이를 통해 국가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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