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승정원 일기...“지진 후 물이 샘처럼 솟아”

도심·산업단지 특히 취약...지반·단층 정밀조사 지적

▲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11·15 포항 지진(규모 5.4) 진앙 인근에서 발견한 '샌드 볼케이노'(화산 모양의 모래 분출구). 지진 흔들림으로 땅 아래 있던 흙탕물 등이 지표면 밖으로 솟아오른 '액상화 현상' 가능성이 있다고 지질연은 19일 설명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지난 15일 발생한 포항지진에서 국내 처음으로 지반 액상화 현상이 확인되면서 과거 지진시 액상화 현상이 발생한 전례가 있는 울산지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에 1643년(인조21년) 지진 발생 후 울산지역에 액상화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돼 연약지반과 매립지 위에 조성된 울산 도심과 산업단지 등이 액상화 현상에 취약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울산지역 지반 구조와 특성에 대한 정밀 조사가 시급해 보인다.

지난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 후 정부와 전문가들이 진앙지 인근 현장조사를 한 결과 소규모지만 광범위하게 진행된 액상화 현상을 발견했다.

◇울산 연약지반 매립지 많아

액상화란 지진의 충격으로 땅이 지하수와 섞이면서 지반이 액체처럼 물렁물렁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액상화가 일어나면 지반이 약해져 건물 붕괴 등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964년 일본에서 일어난 규모 7.5의 일본 니가타 지진과 미국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규모 9.2의 지진 당시 기초 지반이 붕괴해 교량이 넘어지고, 아파트가 쓰러지거나 땅속 구조물이 솟아올랐는데 이같은 현상을 액상화의 예로 학계는 보고 있다.

지진으로 지반이 진흙탕처럼 물렁해지는 액상화 현상은 토양과 물이 섞인 연약지반과 매립지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울산의 경우가 이같은 지반에 속한다. 수년전 울산 북구 신현동 교각공사 현장에서 6000만년 전인 신생대 제3기 때의 것으로 보이는 조개 화석 무더기가 발견된 적이 있다. 바다와는 다소 거리가 있던 곳에서 화석이 발견된 것에 대해 현장을 찾은 전문가들은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며 동해가 형성될 당시 바다에 잠겨 있던 울산과 포항 일대의 퇴적분지가 솟아오르면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포항과 울산 강동 일대는 신생대 3기(마이오世) 때 동해에 가라앉아 퇴적층을 형성했다가 1200만년 전 양산단층을 따라 다시 솟아올랐다고 보고 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액상화 묘사

이번 포항지진 후 발견된 액상화 현상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단적인 예다.

실제로 울산에서 과거 지진으로 인한 액상화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1643년 7월24일과 25일에 큰 지진이 있어 연대와 성첩이 많이 무너졌다. 울산부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다’ ‘물이 샘처럼 솟았으며, 물이 넘자 구멍이 다시 합쳐졌다. 물이 솟아난 곳에 각각 흰 모래 1, 2두가 나와 쌓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국내 액상화 현상 전문가인 하익수 경남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옛 문헌 속 내용은 과거 울산지역에서 지진에 따른 액상화를 묘사하는 것으로, 학계에서도 액상화로 보고 있다”며 “다만 이번 포항지진에 따라 발견된 액상화가 아직 토층이 얇은 논에서 발견된 것만 확인됐지, 건물 기울어짐이나 지반 침하 등의 원인도 이같은 액상화의 원인인지는 정밀조사가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액상화 현상 자체가 발생하면 상당히 위험한 것은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울산시 지반현황 조사 진행 중

그런면에서 울산이 연약지반과 매립지 위에 도시가 형성된 만큼 액상화 위험에 더욱 크게 노출돼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울산시의 ‘울산형 지진방재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를 시행중인 김병민 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는 “현재 포항지진으로 액상화가 확인된 곳은 논이라 피해가 이 정도 수준이지만 울산의 경우 삼산동이나 달동 등 도심번화가가 과거 연약지반과 매립지 위에 세워져 있어 액상화가 발생하면 일본 사례처럼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번 용역 과제에 지반현황 조사가 포함돼 있다. 구체적인 연구는 진행해봐야 하지만 울산지역의 지반 구성과 주변 단층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포항지진 현장에서 진행중인 액상화 조사 결론을 한달 내에 내리기로 했다.

김준호기자 kjh1007@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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