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청소년 범죄, 가정교육 부재 한몫
유년기 올바른 인격·가치관 형성 위해
가정교육으로 자존감·자긍심 심어줘야

▲ 여창엽 울산학생교육원 교학부장

요즘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불미스런 사건들로 혼란스럽다. 우려스럽게도 자살을 선택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청소년들이 밝고 빛나기만 할 나이에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의 원인인 과도한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싸우는 청소년이 10명중 4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자기 제어능력이 없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학교 폭력도 증가하고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다른 학교 여중생이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폭행하거나 또래 청소년을 빈 집으로 끌고 가서 뺨을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등 상처를 입히는 폭행사건들이 언론에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인간다운 보호를 받지 못해 품행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교육의 부재가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사람들의 내면세계는 유년기에 형성된다. 가정과 학교를 거쳐 사회인이 되어 간다.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은 결국 가정과 학교의 책임이지만 한 인간의 본성은 가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인간에게 가정은 최초의 교육의 장이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의 인간관계인 가족 문화 속에서 인격의 형성과 가치관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은 대가족 제도의 붕괴로 핵가족이 늘고, 현대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결손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가족의 분화로 구성원간의 심리적 소외감이 증대되고 교육적 역할이 약해지게 됐다. 학교가 가정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대신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교는 대학입시라는 블랙홀에 빠져들면서 인성을 강조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학교는 사회적 관계로 형성된 공동체이므로 가족이라는 혈연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다 포함할 수 없다. 가정교육이 다시 살아나야 하는 이유이다.

경상북도 안동에 가면 ‘임청각’이라는 고택이 있다. 영남산 기슭에 건축한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생가이다. 그 가문은 임진왜란 때 전 가산을 내어주고 군량미까지 제공했으며, 그의 후손들은 일제시대에 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 고택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500년 동안 단 한명만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고도 부유층의 도덕적 의무를 다한 명문가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정교육을 중시하는 가풍과 자긍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가문의 가정교육은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도를 걷고 오점을 남기지 말 것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 것, 그리고 집안의 화목을 위해 형제지간이라도 말조심을 해야 하며,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정해 반드시 실천할 것 등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임청각 같은 가문이 많다. 그 시대의 많은 가문들은 그렇게 교육을 했다.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자녀교육만은 결코 소홀하지 말고 명문가로서의 당당한 자긍심을 가지려고 했다.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청각의 가문처럼 자긍심을 가지고 생명의 존엄성을 깨우치도록 가정에서 올바른 교육이 시작되어야 가능하다. 가정이 붕괴되어도 그들이 가정생활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긍심을 키워주어야 한다. 자긍심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자기에 대한 믿음인 자신감과 살아오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가운데 형성된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자존감이다. 자긍심은 자신감과 자존감의 조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자긍심이 높은 사람은 어려운 문제나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자긍심이 높은 사람은 의지가 강하고 참을성과 끈기가 있어 독립심이 강하다. 유대인들이 명석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사브라(sabra, 선인장의 꽃)’라 부르며 사막에서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핀 꽃처럼 고귀한 존재로 교육, 최고의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때문이다. 자긍심이 높은 아이는 부모나 교사로부터 역동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생겨난다. 자주 무시당하거나 꾸지람을 듣거나 구박받은 아이보다 자주 접촉하고 껴안고 사랑을 준 아이는 무의식중에 자신이 중요하고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 우리 사회가 임청각 같은 가정의 울타리가 되어 비행 청소년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는 없는가.

여창엽 울산학생교육원 교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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