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박지는 먹을 갈아 고구려 장화황후에게 도움을 청하는 글을 적었다.

장화황후님

제번하옵고,

여옥과 수경은 과거 아이를 바꿔치기 한 일을 황후마마에게 알렸다고 해서 아직도 저에게 커다란 악감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황후마마에게 올린 상소 건을 빌미로 친고구려파의 수장인 저를 역적으로 몰아죽이고 다시 백제의 수하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야의 백관과 백성들은 나라를 찾는데 광개토태왕께 가장 큰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고구려와 신라는 개 취급하고 왜와 백제는 상전국으로 떠받듭니다. 저는 지금의 하지왕과 여옥 섭정 치하보다 차라리 옛날 고구려 고상지 도독의 시절이 더 좋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황후마마께서 하루빨리 고구려 차사를 대가야로 보내어 과거 황후마마에게 올린 상소 건을 거론하는 자를 역적으로 처벌토록 하여 주십시오.

황후마마께 철정 삼천 개와 말 삼십 필을 보내며, 특별히 황후마마에 어울리는 극 세공한 황금 봉잠과 가야곡옥, 상아 목걸이 한 꿰짝을 올립니다.

박지는 고구려 장화왕후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글을 써놓고도 자신을 겨냥한 수경의 사정이 두려웠다. 박지는 기강을 숙정하고 인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돈과 뇌물을 잔뜩 거둬들였다. 그는 물품들을 가득 채운 광으로 갔다. 어둑신한 광에는 쌀과 철정이 산더미처럼 쟁여져 있었고, 옆방에는 융단, 비단, 유향, 호추, 황금, 은자, 옥, 자기, 종이, 술, 서각(물소뿔), 상아, 각종 희귀한 무구류 등이 쌓여져 있었다. 열두 가야와 중국, 고구려, 백제, 신라와 왜에서 들어온 물품들이었다. 박지는 밤도와 광의 뇌물들을 수레에 실어 멀리 비화가야에 있는 처가 쪽 창고로 모두 옮겼다.

마지막 수레가 빠져 나간 뒤 수경이 사정관 둘과 함께 박지의 집에 들이닥쳤다.

“이게 뉘신가요? 후누 장군의 어부인께서 어쩐 일로 누추한 집에 납시었소?”

수경이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집사, 이것은 어인이 찍힌 왕의 사정 명령서요. 부정하게 뇌물을 받고 백성을 착취해 긁어모은 뇌물을 모조리 압수하라는 어명이오.”

“어허, 난 백이숙제처럼 청백하지는 않지만 더러운 뇌물을 먹은 적은 천만 없소이다. 한 푼이라도 먹은 적이 있으면 회천강에 몸을 던지겠소.”

“말이 필요 없소.”

수경이 사정관을 데리고 광문을 열었으나 광은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저택을 샅샅이 뒤졌으나 휑뎅그래한 방에는 고급스런 가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번 사정은 은밀하게 전격적으로 움직였는데 어디서 정보가 샌 것일까?

박지가 수경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수경부인, 옛날 저 광에서 상아목걸이를 고르던 당신의 모습이 기억나는군. 그 목걸이를 한 채 나와 교접했고, 고상지와도 했지. 그걸 후누 장군이 알면 과연 좋아할까?”

 

우리말 어원연구
현재의 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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