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포항으로 이어진 지진피해가 지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바꾸고 있다. 막연한 공포를 넘어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지진위험지역인 활성단층대에 위치한 부·울·경지역을 비롯해 전국 각 지자체, 정부까지 나서 저마다 지진방재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울산도 예외는 아니다. 지진발생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건물의 내진성능 보강에서부터 액상화위험이 드러난 연약지반에 대한 대비책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닌 것이다.

액상화 위험이 높은 연약지반만도 무려 20㎢에 달하는 울산이다. 그 위에는 7개 산업단지와 4개의 도시개발지구가 조성돼 무려 2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반면 지진대비책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울산시가 지진대책으로 정부에 요청한 국립지진방센터 건립, 국가산업단지 지하배관망 구축, 석유화학공단 안전진단 시행을 시작으로 바다와 강 주변 매립지에 조성된 산업단지와 지하에 매설된 배관, 도심 건물의 안전을 지진으로부터 지켜낼 방안을 하루빨리 찾아내야 할 것이다.

울산시는 지난 24일 포항 지진 발생에 따른 대책회의를 열고 액상화가 예상되는 연약지반을 조사하기로 했다. 액상화 조사는 UNIST가 지난 6월 시작해 내년 말 완료 예정으로 수행 중인 지진방재 종합계획 수립 용역에 추가 반영하기로 했다. 앞서 시는 이날 회의에서 연약지반에 건립된 4개 도시개발지구와 7개 산업단지를 액상화 고위험군으로 분류했다. 전체 면적은 19.79㎢로 여의도 면적(2.9㎢)의 6.8배에 달했다. 시민 2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대부분 바다와 강 주변 매립지로 지반이 펄로 형성됐다. 도시개발지구는 삼산, 달동, 남외, 진장·명촌 등 4개 지구로 지표면에서 32~43m 깊이에 암반층이 있고 그사이는 거의 펄층이다. 산업단지는 당월지구,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자동차, 롯데정밀화학, SK에너지, 삼양사 등 7곳이다. 바다를 매립한 곳이어서 10~50m 지하에 암반층이 형성돼 있다.

시는 이같은 위험성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 9월12일 경주 지진 이후 정부에 여러 가지 국비 사업을 건의했으나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밝혔다. 혁신도시에 이주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사업을 총괄하는 국립지진방재센터 건립은 다음 달 사전조사와 설립 추진안을 마련하고, 내년에 센터 구축을 위한 상세기획 연구에 이어 2019년께 기본 및 실시설계가 이뤄질 전망이다. 또 울산국가산업단지 지상 배관망 구축은 지진이나 굴착공사 때 석유화학 물질을 운송하는 배관의 손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2011년부터 추진됐으나 산업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 등 기관별 입장이 달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석유화학공단의 시설물 노후화에 따른 예방적 안전대책인 국가산업단지 지하배관 안전진단 및 안전센터 건립은 130억원의 사업비 중 이달에 23억원의 정부 예산이 반영돼 국회 예결위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석유화학공단과 원자력이 밀집한 울산의 특성을 감안해 소방청이 추진,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된 특수재난 훈련센터 건립 사업은 전혀 진척이 없는 실정이다.

정부의 상황판단력이 아쉽다. 원전과 석유화학공단 등 주요산업단지가 밀집한 울산은 대한민국의 화약고나 진배없다. 게다가 경주·포항지진에서 드러난 액상화 문제 등 모든 문제점이 드러날 가능성이 그 어느곳보다 농후하다. 뒤집어 말하면 울산의 지진방재대책이 우리나라 지진대책의 표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유일의 재난안전 전문연구기관인 국립재난안전연구원과 연구중심 대학인 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이 위치해 있는 장점을 살려 지진방재 분야를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면 우리나라의 지진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뒤따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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