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 엄계옥 시인

시인은 말을 줄여 쓰는 사람이다. 짧은 문장에 일생이 담겼다. 생명은 거친 바다를 떠다니는 일엽주(一葉舟)다. 청춘을 전쟁에 저당잡힌 오디세우스가 이십 년 만에 돌아와 아내와 처음 나눈 말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온갖 유혹과 죽음을 물리친 부부가 나란히 누워 나눈 밤 대화. 부부란 내 삶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태며 살아가는 사이다. 일상은 생명에게 잠든 바다처럼 평안을 주지 않는다. 바다는 언제나 꿈꾸는 자들의 것이다. 꿈과 현실은 달라서 위험한 모험은 난파라는 대가를 치르게도 한다. 항구를 떠난 배는 반드시 돌아오고 돌아오면 다시 떠나고 싶은 게 숙명이다. 인생에 굴곡이 없다면 삶에 무늬가 없다. 상처에 소울 메이트 역할을 하는 것이 시다. 이 시는 인생이라는 거친 항해 끝에 평온한 저녁을 맞은 부부 이야기다. 내일 또 어떤 파고를 만날지 모르지만 서로를 위로하며 늙는 일, 그보다 더한 평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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