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수경이 박지에게 말했다.

“집사의 목숨이 고양이보다 목숨이 많다는 건 인정하겠어요. 헌데 전에처럼 장화황후에게 서신과 뇌물을 보내 조정을 치려고 하는 행위는 반역행위예요. 고구려로 올려 보낸 서신과 수레는 지금이라도 철회를 하세요. 그러면 반역죄는 용서받을 수 있어요.”

“지금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이오? 칼자루를 잡고 있는 자는 당신이 아니라 나요. 나의 수레는 지금도 덜커덕거리며 고구려로 향해 올라가고 있소. 만약 수레의 방향을 되돌리길 원하면 오늘밤 내게로 오시오.”

음흉한 박지가 뭘 원하는지 수경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서신과 뇌물이 장화황후에 도착하게 되면 또 한 차례 반고구려파에 대한 피의 숙청이 일어날 것이고, 대가야 독립파인 남편 후누가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될 것이다.

‘무조건 수레의 방향을 되돌려야 한다.’

수경은 밤늦게 소매 안에 작은 약첩을 감추고 박지의 저택으로 향했다. 보름달이 둥두렷이 떠 밤길이 훤하게 밝았고 가야천에서 내린 물이 달빛에 반짝였다. 수경이 솟을대문을 조용히 두드리자 박지는 올 줄 알았다는 듯 문을 열고 나와 수경을 사랑채로 맞이했다.

박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침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오늘 밤 달맞이꽃이 활짝 피었소이다.”

“교교한 달빛이 꽃숭어리를 벌어지게 했죠.”

수경은 전과는 달리 매서운 눈초리를 거두고 미소를 지었다.

수경은 권력과 남자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권력이 없는 남자보다는 남자가 없더라도 권력을 누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잘생긴 남자에 미치면 여자는 장님이 되는 법, 그녀는 차라리 늙은 남자의 여인이 되어, 돈과 권력을 누리기를 원했기에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리로 오시오. 방아를 찧읍시다.”

“뭘 그리 급하세요. 술이나 한 잔하고 시작해요.”

박지는 중국에서 온 최고급 오량액주를 내놓았다. 박지가 안주를 가지러 간 사이 수경은 소매에서 미약을 꺼내 박지의 술잔에 탔다. 수경이 탄 미약은 원지, 사상자, 토사자, 부자, 아편, 대마, 음양곽을 달인 액으로, 먹는 순간 근이 흥분되고 마음이 혼미해 삿된 환영 속으로 빨려 들어가 마침내 정신을 잃게 된다.

수경이 잔을 들고 말했다.

“이 밤에 대가야로 돌아오고 있을 집사어른의 황금수레를 위하여, 건배!”

“건배!”

박지는 싱긋이 웃으며 미약을 탄 잔을 받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궁실 약전원에서 제조한 이 미약은 복용하면 성기능의 과부하로 인해 불안, 경련, 환각이 발생하고 팔다리가 마비되어, 마지막에는 호흡장애를 일으켜 의식을 잃게 되는 강력 최음제였다.

수경이 옷고름을 풀자 옷이 스르르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수경의 허연 엉덩이가 달빛에 반짝였다. 박지는 뒤에서 허연 허벅지와 엉덩이골을 보고 맹수와 같은 맹렬한 성욕이 솟구쳤다. 그가 뒤에서 골붉은 근을 이입하자 수경이 앓는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움직였다.

 

우리말 어원연구

방아:[S] vahaanga(바하앙아), 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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