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며칠 전 반 아이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지금 미칠 것 같아요!” 교무실로 가자며 일단은 교실을 벗어났다. “왜 그러니?” 물었더니 단짝 친구와 싸운 일이 불씨가 돼 소소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고, 방금도 감정이 폭발하기 전이라고 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마음에 “그렇구나”라며 공감해주었고 마침 3교시 수업이 없어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이야기를 다 한 아이는 한결 후련해진 표정으로 어떻게든 잘 극복해 보겠다고 말하고 교실로 갔다.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걱정인지 안도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끝나고 더 이상 커지기를 바라지 않았으면 하는 걱정과 학교폭력으로 번지지 않고 그나마 여기서 끝나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교차했다.

담임을 맡으면 해마다 만나는 풍경이다. 학교는 여러 성향의 학생들이 어우러져 지내는 곳이다. 매일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무사하게 지나가면 다행이다. 이번 일은 초반부터 아이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스트레스 상황에 놓일 때마다 담임을 찾아주고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할 수 있어서 진짜 다행이었다. 더 다행으로 느껴지는 것은 여학생 사이의 미묘한 감정적인 문제들은 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학교나 남녀공학 및 실업계 고등학교의 경우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최근 부산 여중생 사건은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을 달라지게 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생각만큼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과거에 비해 물리적 폭력은 감소했지만 언어폭력, 사이버폭력으로 양상이 변했다. 사이버폭력의 경우는 글쓴이의 감정에 글을 읽는 이의 감정까지 결합, 소소한 감정에서 시작한 것이 큰 시비가 되기도 한다. 학교의 학생안전부에서는 학교폭력으로 이런 문제들까지 다루어야 한다. 담당교사는 모든 교육적 역량을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쏟아야 한다. 소소한 분쟁이면 교사 개인의 역량으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사안이 복잡한 경우는 법에 대해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에 준하는 노고를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 슬프지 아니한가?

교육청에서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어울림프로그램과 어깨동무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또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예방과 관련해 글짓기, 교육,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매우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조금 부족한 듯 느껴진다. 이제는 법과 제도가 받쳐 주어야 하고 학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권한 밖의 일은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 또 학교에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학교는 학력의 우수함이 유일한 평가 수단이었다. 이 평가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학교 폭력에 준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인정의 욕구가 있다. 학교는 인정 분야가 너무 한가지로만 국한돼 있다. 배움의 내용은 분명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생활의 지혜도 있지만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술, 관계의 기술,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품격도 해당된다. 학교가 교과목의 학습만이 아닌 자신에게 뛰어난 부분을 찾고 거기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친구들과 함께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친구의 인간됨을 볼 수 있는 인간관계 기술을 가르치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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