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여론형성을 방해·왜곡
‘가짜 뉴스’ 심각한 사회 문제
진위여부 판단하는 습관 길러야

▲ 김상곤 울산시 감사관

우리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고 정리할 때 전후의 설명이 가능한 이야기의 형식에 의존하는 것이 편하다. 특히 어려운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거나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 있으면 대개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설명한다. 그것이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인 진술보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쁨을 나누는 일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나 친구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공감이 가능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배경은 역사나 세계와 같은 거대한 흐름이 아니라 개인적 경험과 상상이 미치는 일상적인 생활영역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가까운 이웃의 성공스토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을 비추어 보거나 TV 속에서 본 아프리카 가난한 소년의 벗어날 수 없는 기막힌 운명에 대해서 가슴 아파한다.

경험과 상상이 적절히 조합된 이야기의 세계는 이러한 일상뿐 아니라 여행이나 스포츠 경기 같은 특별한 일에도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여기저기를 그냥 둘러보는 여행보다는 테마기행이나 역사기행같이 스토리가 있는 여행상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심지어 오지탐험같은 위험한 체험이 여행상품이 된지도 오래다. 지역의 작은 여행지에도 온통 경험과 상상을 결합한 스토리로 채워져 있다. 적당한 이야기가 없으면 누가 걸었던 길이라던가 누가 사냥했던 곳이라고 표기하고서야 직성이 풀린다.

한발 더 나아가 TV프로그램은 온통 이야기 만들기에 열중해 있다. 픽션인지 넌픽션인지 구분이 곤란한 리얼체험 프로그램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매일같이 쏟아내고 있다. 연예인들의 야생체험 극복 스토리와 어린아이의 성장 이야기는 황금시간대를 차지하고 있고 연예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필자도 가수 김건모의 독특한 취미가 만들어 낸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가정용 술 전용 냉장고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미식축구의 규칙이나 경기 결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도 결승전에 진출한 한국인 2세의 역경스토리에는 모두 감동하고 박수를 보냈다. 몇 년 전 수퍼볼에서 MVP를 차지한 하인즈 워드 이야기다. 수퍼볼이 어떤 경기인지 MVP가 얼마나 대단한 영예인가 보다는 한국인 어머니와 하인즈 워드가 겪은 어려운 이야기가 더 관심을 끌었다. 물론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부처님도 어려운 세상의 진리를 십우도와 같은 그림 속 이야기로 사람들을 가르쳤고, 예수님도 인간사의 도리를 이웃의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설명했다. 지금도 목사의 설교나 스님의 설법은 성경과 불경속의 성인 이야기로 시작해 이야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최근 우리 주변에 쏟아져 나오는 그럴듯한 이야기는 어느 것이 참말인지 어느 것이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TV프로그램에서 각본과 연출을 통해 사실인 것 같은 리얼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것은 스토리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을 위한 서비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뉴스를 가장하고 현장영상을 가장한 가짜 이야기가 진실보다 더 중독성을 띄고 우리사회에 퍼져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가짜뉴스 대책 법률을 만들어야 할 만큼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는 거짓 이야기를 속임수 속에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잘못이 크지만 휴대폰 액정화면 속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진실로 믿어 버리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가짜 뉴스는 정당한 여론형성을 방해하고 왜곡한다는 사회적인 문제가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이런 꾸며진 이야기의 자극성에 물들다 보면 현실에 대한 사유 능력이 점점 취약해지고 판단력의 타인 의존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판단능력은 완벽하지도 않고 감정상태나 경험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한다. 유럽지도를 오늘날의 형태로 만든 로마의 명장 카이사르는 유럽 정복 전쟁 중 기록한 <갈리아 전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지루하고 범속한 현실보다는 머릿속의 신념이나 희망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TV를 보면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 떠나는 꿈을 꾸고 아내는 TV드라마 속의 낯선 시간과 상황 속으로 가는 여행을 멈추지 못한다.

김상곤 울산시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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