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수경이 몽환 속에 교합한 사람은 대비 여옥의 내시 근대였다. 근대는 원래 신라인이었는데 고구려에서 떠돌던 장사꾼을 박지의 세작이 대가야로 데려왔다.

근대는 신라 우시산국의 천민 출생으로 진흙 인형인 토우를 만들어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그가 진흙으로 빚은 토우는 음란한 것으로 여성의 특징인 유방과 엉덩이, 허리를 과장한 나체상이나 거대 성기를 가진 남성상, 남녀교합상 등인데 장난감이나 장식용, 주술용, 혹은 무덤의 껴묻거리로 사용되었다.

근대는 저잣거리에서 토우를 진열해놓고 팔았는데 토우가 잘 팔리지 않자 스스로 토우의 음란한 동작을 춤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해내 토우의 모습을 춤으로 개발했다. 저잣거리 사람들 앞에서 토우를 흉내 내는 음란한 춤을 추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토우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실제로 그의 성기는 토우의 과장된 그것만큼이 크고 단단했다. 그는 밤에 열리는 꽃불 축제나, 어둑신한 저잣거리에 나가서는 자기의 성기를 슬쩍 꺼내 음란한 묘기를 보이면 더 큰 돈벌이가 되었고, 그것으로 여자들과 시정잡배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근대가 신라 왕실 여인들의 눈에 띄게 된 것은 계림 달밤에 꽃불축제에서였다. 꽃불축제에서는 남녀가 모여 화등을 켜고 무무와 화관무를 추면서 서로를 유혹했다. 근대는 이 꽃불축제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남자였다. 그는 토우와 토우춤, 자신의 양물을 무기로 금성의 화류계 뿐만 아니라 궁중 여인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근대는 신라 왕실의 여성과 몸을 섞다가 형리에게 들켜 처형 직전에 모은 전 재산을 뇌물로 주고 간신히 풀려났다. 그리고 신라를 떠나 고구려로 간 그는 평양의 서궁 앞에서 토우 장사를 했다. 박지의 세작은 평양에서 도드리 장단에 맞춰 한 토우 장사꾼이 거대한 성기를 슬쩍 내비치며 추는 춤사위를 보고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박지 집사가 간절히 원하던 물건을 찾아낸 것이다.

박지는 근대를 대가야의 궁중으로 불러들여 그의 몸을 검사하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박지는 근대의 수염과 터럭을 뽑고 내시로 속여 대비궁 안으로 들여보냈다.

박지가 대비에게 근대를 소개하며 말했다.

“이 놈은 원래 신라인인데 궁중의 왕녀를 건드려 궁형을 받은 자입니다. 헌데 신라의 궁형 기술이 형편없다는 건 알려져 있습죠. 곁에 두시면 꽤나 쓸모 있는 놈입니다.”

대비 여옥과 열 살 아래인 근대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대비 여옥은 처음에는 근대를 외면했다. 여옥은 열두 가야제국을 호령하던 회령대왕의 왕비와 지금도 대륙 천하를 지배하고 있는 광개토태왕의 소후였다. 색을 밝히기보다 귀족 여인의 단아한 용모와 품위, 인품과 교양으로 왕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대비궁에서 홀몸으로 벌써 수년 째를 지낸 지금 근대라는 젊고 건장한 내시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대비가 악몽을 꾸며 두려움에 떨자 근대는 이를 기화로 침전으로 들어가 밤새 대비를 달래며 대비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회한 박지의 미인계가 먹힌 순간이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터럭. 【S】turiyukh(투리유크), 【E】hair on the head. ‘tu’는 ‘터져나오다’, ‘riyukh’(리유크)는 ‘엮다’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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