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을 들이받고 뛰쳐나온
황소의 고삐를 낚아채지 못했다
유년에 날렵하던 소몰이 실력,
이제 무뎌진 탓인가
화난 듯 내민 주둥이는 분명
여물이 고프거나
암소를 본 것이 분명하다

-중략-

가득 퍼다 준 여물 냄새가 아직
내 몸에 베어 있어서 일까
그 땐 귀하디 귀한 바래기 토끼풀
지천에 널려도 한 숱 넣어주지 못한
내 팔이 자꾸만 미안하다

▲ 엄계옥 시인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을 보고 울컥 한 적이 있다. 황금소가 끄는 달구지에 아내와 두 아들을 태우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향해 가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여서다. 따뜻한 나라에 화가는 죽어서야 도착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거울신경세포라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해 마치 자기 자신이 하는 것처럼 본다는 뜻이다. 대상을 통해 페르소나를 만난 기분이랄까. 우리는 너나없이 이중섭 그림을 대할 때면 채무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 저변에는 외로움 쓸쓸함 그리움 같은 인간 본연을 이루는 정서가 깔려 있어서다.

이 시에서도 ‘황소’ 통해 고향집 소를 만난다. 황소는 화폭을 뛰쳐나와 시인을 무등 태우고 유년시절로 돌아간다. 옛날로 가서 여물 냄새를 맡은 일은 마음이 편안해 지는 일이다. 그 편안함을 무한대로 제공해 주는 것이 시요, 그림이라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 통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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