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형석 경제부 기자

“조선소 퇴직자들은 이제 갈 곳이 없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왔는데 어떻게 될 지…”

지난달 27일 울산 문수컨벤션에서 열린 ‘2017 SK 동반성장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한 구직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석유화학 업종 출신이 아닌 조선업종 출신의 퇴직자인 이 구직자는 “올해 초부터 몇 개월째 구직활동을 하고 있으나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우선은 플랜트 쪽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안되면 경비직이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날 채용박람회에는 이들처럼 중장년층 구직자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젊은층이 많았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젊은층과 중장년층 구직자들의 비율이 거의 절반 정도 될만큼 중장년층의 구직 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이들은 상당수가 조선업종 출신의 퇴직자들이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도 “올해 행사에는 예년에 비해 경력자의 사전 현장면접 신청이 많았는데, 최근의 조선업 불황에 따른 실직자의 구직활동 증가가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날 채용박람회는 예년에 비해 2~3배 가량 많은 1500명이나 몰리며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이들 구직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실제 이들이 들어갈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고 한정돼 있었다. 따라서 몇 명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60대 초반의 또 다른 조선업종 출신의 구직자는 “한 때는 울산과 한국 경제를 이끌던 산업 역군이었으나 이제는 사실상 ‘퇴물’이 됐다”고 푸념한 뒤 “조선업이 언제 다시 회생할 지 모르겠으나 정부와 지자체에서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1~2년 새 조선업종에서 인력 구조조정과 명예퇴직, 회사 폐업 등으로 퇴직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이들의 재취업은 그다지 높지 않은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조선 산업 퇴직인력 교육 및 재취업’ 사업에 참여한 조선업 퇴직자 7110명 중 21.5%인 1532명만 재취업에 성공했다. 전체 5분의 1만 다시 일자리를 얻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조선업 퇴직자들은 어쩔수 없이 창업시장에 내몰리거나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로 떠돌고 있다. 울산도 조선업 불황의 여파로 동구지역의 인구가 1~2년새 급감하는 등 23개월째 인구 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해부터 ‘조선분야 종사자 기술고도화 및 석유화학업종 재취업 지원사업’ 등을 통해 재취업 교육을 지원하고 있으나 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 수가 한정돼 있는데다 석유화학·플랜트 업계의 진입장벽 등 여러가지 이유로 재취업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경남 거제시와 거제대학교가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STX조선해양 퇴직자 12명을 거제대 산학협력교수로 채용하고, 사천시가 조선업 설계분야 퇴직자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채용, 항공기 제조분야에 투입한 것은 조선업 퇴직자 재취업의 대표적 우수 사례로 꼽힌다. 대학과 회사로서는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매력이 있고, 조선소 퇴직자는 새 일자리를 찾아 모두에게 이익이 된 것이다.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의 조선소 숙련공들은 우리나라 조선업의 흥망성쇠를 함께 하며 한때 세계 조선산업을 이끌던 주역들이다. 구조조정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재취업을 돕고 또 이들의 축적된 기술력과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고 지역사회와 젊은 근로자들에게 이식될 수 있도록 보다 실질적인 재취업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차형석 경제부 기자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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