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열망하는 촛불혁명의 한해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관행을 탈피
새로운 미래를 향한 첫걸음 내디뎌

▲ 이근용 와이즈유(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우리는 보이건, 보이지 않건 수많은 경계 속에서 산다. 내 집과 이웃집의 경계, 차도와 보행로의 경계, 남북한의 경계 같은 것이 눈에 보이는 경계라면 가을과 겨울의 경계,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 보수와 진보의 경계 같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계는 넘지 못하게 돼 있고, 넘으면 일정한 제재가 가해진다.

미디어 세계에도 이런 경계가 엄격히 지켜지던 때가 있었다. 신문과 방송, 방송과 통신, 네트워크와 콘텐츠, 콘텐츠와 광고의 경계가 분명해서 이들의 겸업, 겸영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90년대 인터넷, 모바일 미디어가 등장하고, 플랫폼 사업자가 출현하면서 미디어 융합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미디어 세계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경계를 넘는 융복합, 통합이 화두가 돼 있다.

원래 자연 세계에는 경계가 없는데 인간들이 시공간의 경계를 나눴다. 학문의 세계에도 마찬가지다. 인문학, 과학의 각 전공 영역으로 나누어 연구·교육을 해왔다. 이제는 전공의 경계를 넘어, 인문, 과학, 예술의 융합 속에서 새로운 가치와 돌파구를 찾고 있다. 사회적으로 융합의 기치를 내건지 꽤 오래 됐는데도 그리 성과가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당위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막상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 장애에 부딪친다. 경계를 넘는데 용기와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많이 들었던 용어 중에 사회적으로는 적폐청산, 경제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이 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들 용어가 의미하는 핵심 내용 중에는 ‘경계 넘기’가 포함돼 있다고 본다. 필요없거나 잘못된 칸막이를 걷어내고, 불합리한 경계는 허물어서 틀을 새롭게 짜보자는 의도와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이다. 과거 지향이나 보복이 아니라 진정한 소통과 미래 지향으로 나아가자는데 본 뜻이 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전체를 통합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럴 때 한 차원 위에서 보는 것이 가능해지고, 창조와 창발이 가능해진다. 사일로 안에 머물러서는 다른 세계를 보지 못하고, 본인도 변화하기 어렵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개방과 교류의 길로 가지 않아 퇴보의 역사를 보인 숱한 선례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대부분 있는 그대로의 경계를 지키며 산다. 경계를 넘어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반증이다.

사회적으로 경계 넘기를 본격적으로 보진 못했더라도 우리는 올해 여러 변화의 징조를 보았다. MBC는 파업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경영진 구성을 눈앞에 두고 있고, 사회적 참사법이 국회를 통과해 세월호 2차 조사위원회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게 됐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숙의민주주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고, 교육부는 최근 대학 줄 세우기 방식의 대학 구조조정 평가 방식 개선안을 발표했다.

유행의 탄생에서 열강의 몰락까지 미래를 예측하는 힘으로서 ‘대중의 직관’ 개념을 제시한 존 캐스티의 관점에 의하면 우리는 올해 변화를 열망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캐스티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사회에 대해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라고 느끼는 분위기가 미래를 결정한다고 본다. 사건보다 분위기가 먼저라는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라는 말은 추상적이고 표본조사를 해서는 제대로 측정하기가 어려운 개념이다. 그렇지만 최근에 소셜미디어나 검색어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으로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읽는 것이 가능해졌다. 희망, 낙관, 미래 같은 말이 실망, 비관 같은 말보다 더 검색된 것으로 나온다. 요즘 기업들은 소셜미디어나 그 밖의 텍스트로 구성된 데이터의 감성분석을 통해 브랜드 및 상품과 관련된 고객들의 전반적인 느낌이나 기분을 발견하고 마케팅에 활용한다.

경계 넘기는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관행에서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촛불혁명으로 누적된 폐해를 해소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된 올해, 우리가 본 희망의 징조가 이후 전개될 경계 넘기의 지렛대가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내년에는 대학생과 젊은 청년들이 마음껏 상상하며 한계를 뛰어넘고, 희망을 노래하는 해가 되면 좋겠다.

이근용 와이즈유(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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