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대가야는 꺽감 하지왕과 어머니 여옥의 섭정으로 뇌질왕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왕은 어머니 여옥의 섭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꺽감은 여전히 배움에 목마르고 마음이 답답했다. 고구려에 질자로 있을 때에는 경당에서는 박사들 밑에서 경학과 역사를 배우고 수재들인 학생들과 학문을 논하며 무예를 익혔다. 그의 가장 큰 스승은 때때로 질자들에게 제왕학을 가르쳤던 광개토태왕이었다. 태왕은 질자들을 불러 국가를 경영할 철학을 자신의 경험과 예화를 통해 쉽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가야에 돌아와보니 무는 있되 문은 없었다. 경당과 같은 학문기관도, 제왕학을 가르치는 경연도 없었다.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의부이자 대가야 회복의 건국공신인 군신지 후누 장군에게 가르침에 탁월한 스승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후누 장군은 하지왕에게 젊은 학자를 데려와 소개했다.

“이 분의 이름은 우사로 금관가야의 태사로 있던 분입니다.”

하지왕이 우사를 보니 눈빛이 당당하고 약간 마른 얼굴과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전형적인 서생의 모습이었다.

“금관가야의 태사면 가야의 역사를 쓰고 사고를 관리하는 분이시군요.”

우사가 하지왕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이번 전쟁으로 금관성이 폐허가 되자 외가인 대가야에 의탁하고 있습니다.”

하지왕이 우사에게 물었다.

“나도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헌데 대체 역사란 무엇입니까?”

“사기를 쓴 사마천은 역사란 ‘구천인지제, 통고금지변, 술왕사지래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통찰하며, 지난 일을 기술해 다가올 일을 안다는 것입니다.”

“아, 좋은 말이오. 헌데 태사께서는 무엇이라 하오?”

“전 역사란 한 터럭의 거짓도 없는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런 역사의 기록이 이 세상에 있기나 하겠소?”

“말씀대로 드뭅니다. 승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한 역사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거짓 역사를 바로잡으려 한 까닭에 핍박도 많이 받았지만 굴하지 않았습니다.”

우사는 역사에는 어떤 거짓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천재 소장학자였다. 그 때문에 금관가야의 역사를 미화하는 기존의 나이든 사관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특히 이번 여가 전쟁에서 금관가야가 대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으로 신라의 금성을 점령한 것을 내세워 전쟁의 승리로 기록하려는 사관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그런 환멸도 금관가야를 떠나 대가야로 온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왕이 우사에게 큰 절을 하며 말했다.

“저는 나이가 어려 어리석고 판단도 아둔하니 앞으로 저의 스승이 되셔서 바른 길을 밝혀 주십시오.”

 

우리말 어원연구

구천인지제, 통고금지변, 술왕사지래자(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述往事知來者). 사마천이 임소경에게 보내는 편지인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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